‘숨어 듣는 명곡’이라는 말이 있다. 에어팟 시대가 된 요즘은 의미가 덜해졌지만, 간단히 정의하면 “길 가다 이어폰 빠지면 (그래서 남이 들으면) 부끄러울 것 같은 노래”를 뜻한다. K팝 외길 인생을 걸으며 파이브돌스의 <이러쿵저러쿵>이나 제국의 아이들의 <마젤토브> 같은 노래를 몰래 듣던 내게 더는 숨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 건 SBS가 내놓은 뉴미디어 채널 <스브스뉴스>의 ‘문명특급’ 코너다. <마젤토브> 작사가에게 “재팬 걸, 멕시칸 걸” 같은 가사는 도대체 왜 썼는지 캐묻고, 가수 나르샤를 만나 <삐리빠빠>는 시대를 앞서간 노래인데 아직도 그 시대가 오지 않았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논하는 영상마다 또 다른 ‘숨어 듣는 명곡’을 추천하는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알음알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문명특급’ 코너의 핵심은, 구성과 진행을 맡은 이은재(닉네임 ‘재재’) PD다. 폭염 속에서 ‘옥탑방 체험’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부터 슬라임 만들기에 빠진 초등학생까지 누구를 만나든 놀라운 친화력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는 무척 흥미로운 콘텐츠 기획자다. 뜨거운 주목 경쟁이 펼쳐지는 세계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무례한 언행을 저지르거나 편견을 재생산하지 않으려면 재능은 물론 지성이 필요하다. 게다가 한국 예능계의 남성 중심적 기수 문화에 물들거나 치이지 않고 혼자서 태연하게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웃기는 뉴 타입 여성 예능인의 등장이라니, 세상이 조금은 바뀌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