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다신교를 믿던 그리스인이었는지 이번 생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빠를 모시며 혼자만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오빠들이 있다면 아무래도 신화다. 대학 시절 하라는 영어와 컴퓨터 공부는 안 하고 가요프로그램 녹화와 공개방송 출석에 매진한 결과 거짓말 조금 보태 내 시력보다 약간 높은 졸업 평점을 얻은 탓에 번듯한 대기업에는 원서 한번 넣어보지 못한 채 마감과 마감 사이를 떠도는 팔자가 되고 만 것이다. 물론 그 시절 김동완 오빠가 미리 경고하셨으니 할 말은 없다. “신화는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기자로 일하는 몇년 동안 아무리 멋진 남자 연예인이라도 사심없이 ‘인터뷰한 사람’과 ‘인터뷰할 사람’ 정도로 분류하는 냉철한 이성을 탑재하게 되었음에도 신화가 무려 4년여의 공백을 넘어 활동을 재개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설렜던 것은 그 때문이다. 업무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JTBC <신화방송> 현장공개에 찾아갔을 때 10년 전 SBS <도전 1000곡>과 KBS <출발! 드림팀> 현장의 공기가 느껴진 것은 기분 탓이었겠지만.
제목 그대로 신화의, 신화를 위한(?), 신화에 의한 프로그램인 <신화방송>은 자기들끼리 모아놓으면 지치지도 않고 잘 노는 신화의 특성에 따라 SF, 스포츠, 다큐멘터리 등 매번 다른 컨셉으로 진행되는 예능프로그램이다. 2052년이라는 가상의 시대적 배경을 두고 ‘대통령의 딸이 납치되었으니 슈퍼맨, 원더우먼, 투명인간, 600만불의 사나이 등 원조 히어로로 변신해 구출하라’는 미션은 자칫 뭐 하자는 플레이인가 싶은 뜨악함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삼십대 초·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방석 뺏기 게임에 이성을 잃고 몰입하는 오빠들의 모습은 여전했다. 공중부양, 드롭킥에 룰이 적힌 종이를 찢어버리기까지 하며 ‘치마’와 ‘비닐의상’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서로 놀려먹기에 바쁜 태도도 번지점프와 흉가 체험까지 별별 컨셉의 예능에 다 출연했던 그 시절과 똑같았다. 종합편성채널의 앞날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보니 <신화방송>에 대해 “신화가 평생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직업이면 좋겠다”는 윤현준 PD의 바람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녀 팬들과 14년 동안 함께 나이 들어온 ‘오빠들’이 한데 모여 노는 모습만은 훈훈했다. 데뷔 시절 성과는 미약하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창대해지며 아이돌계의 전설이 아닌 레전드가 된 신화에 대해 “여섯명이 합체 로봇처럼 서로 보완해주는 면이 있다”던 동완 오빠의 말씀은 역시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