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MBC every1의 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희엔터테인먼트’ 구희본 대표(박희본)와 88년 미스코리아 진 김성령의 술자리는 정말 근래 보기 드문 명장면이었다. 비타500 박스를 왕관 모양으로 오려서 머리에 씌울 생각은 대체 누가 했을까. 아마도 둘 사이에 미스코리아가 화제에 올랐을 테고, 김성령이 구 대표 머리에 씌워주는 컷이 있으니 구 대표가 꽤 마음에 들었던 김성령이 전년도 미스코리아가 티아라를 씌워주는 고별행사를 벌였을지도. 구 대표의 휴대폰에 남아 있던 ‘꽐라’ 사진에는 개업축하 화분에 걸린 리본을 걷어서 미스코리아 어깨띠마냥 두른 김성령의 사진이 여럿 담겨 있다. 88년 미스코리아가 현재진행형이다.
당일 처음 만난 사이인 두 사람의 술자리 대화도 걸작이다. 돈이 인생의 80%다. 아니다. 고작해야 70, 80%다 등 별 차이도 없는 푸념을 주고받던 구 대표는 돌연 뭔가 선언하듯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한다. “… 그런데 선배님은 깨끗하십니다!” 미인, 예쁘다, 청순, 순수, 섹시 등등 어휘도 다양한데 어째서 구희본은 홍상수 감독의 남자주인공들이 할 법한 술주정을 하는 걸까. 과거에는 걸그룹이었다면서 아직 삼십대 초반인데 왜 중년 부인 같은 투피스에 올림머리, 효도 신발을 신고 다닐까?
견고한 인과율 아래 쓰여지는 대개의 드라마들은 인과관계 그리고 인물의 반응이나 행동에서 패턴을 찾거나 이질적인 요소를 골라내 캐릭터를 읽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대사와 충실한 디테일을 베이스로 상황이나 장면들을 삽화처럼 툭툭 던져 쌓아가며 캐릭터를 불린다. 이 시트콤은 삽화들 사이의 우연이나 차이, 온도차 등의 긴장요소로 캐릭터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품고 있는 게 굉장한 매력이다. 해서 구 대표의 말과 행동들에 이것저것 이유들을 짐작해봐도 정말, 진짜로 보고 듣고 반응 안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윤성호 감독은 각각의 삽화를 아주 잘 만들고 있고 필요 이상 늘리지 않으며, 전개도 빠르고 촘촘해서 여타 시트콤과는 조금 다른 기대를 품는 중이다.
여하튼 구 대표가 애지중지하던 배우 “우리 박이(윤박)”가 라이벌 소속사로 떠난 그날, 난리블루스 같은 술판을 지나 생각지도 않았던 미스코리아 진 김성령과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팔 휘적거리며 술주정 연기를 하는 김성령씨 무척 귀엽다. 이분이 이렇게 매력적인 줄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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