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만든 장편영화로 에 영국영화 특집 기사가 실리게 만든 <빌리 엘리어트>의 감독 스티븐 달드리(40)는 <조지 왕의 광기>의 니콜라스 하이트너, <노팅 힐>의 로저 미첼, <아메리칸 뷰티>의 샘 멘데스에 이어 영국 연극무대가 영화계에 선사한 또 하나의 재능이다. 셰필드대학을 졸업하고 32살의 젊은 나이에 런던 로열 코트 극장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달드리는 유명세와 대중의 시선에는 일찌감치 단련된 인물. 영화로 창작 야심의 범위를 넓힌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달드리 역시 연극 무대에서 연마한 극적 타이밍과 드라마의 호흡을 조절하는 ‘위기 관리’ 능력을 스크린에서 한껏 과시했다.
<빌리 엘리어트>는 <노팅힐>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등을 제작한 워킹 타이틀 영화사의 독립영화 브랜치 WT2의 창립 작품. 스티븐 달드리는 워킹 타이틀에서 단편 <에이트>를 만들고 맺은 3년 계약의 첫 영화로 <빌리 엘리어트>를 연출했다. 영국의 탄광 분규 시기를 배경으로 택한 까닭은 그 시기가 당시 열혈청년이었던 감독 자신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 <돌이킬 수 없다>(Never be the Same)라는 연극을 탄광촌에서 순회공연하고 다녔던 달드리는, 폐광에 항의하는 광부들의 마지막 런던 시위 대열에 함께하기도 했다고. “당시를 그린 더 많은 영화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1980년대 중반은 전후 영국 정치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는 시, 음악, 연극 분야에서도 창의력이 놀랍게 발휘된 시기였다”고 그는 말한다.
제작중에는 흔한 영국 저예산영화 중 한편일 뿐이었던 <빌리 엘리어트>가 칸에서 크로아티아에 이르기까지 객석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것에 대해 달드리는 조금 당황하는 기색. “얼마 전 국립영화학교에서 강좌를 했을 때 마치 사기꾼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은 아직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것이다”라고 고백하는 스티븐 달드리에게 아직 영화만들기는 그의 비유처럼 ‘베트남전쟁’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