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주·조선희·최보은·안판석 - 세 아줌마와 한 아저씨, <아줌마>를 논하다
과거지사. 최보은씨는 축시(丑時) 즈음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민가를 찾아 떠나는 일을 종종 벌였는데, 어느 날 일산 정성주 작가의 집도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새벽녘 일어나서 글을 쓴다는 작가와 잠을 거르고 달려온 옛 <씨네21> 기자 최씨는 저번에 보고 두 번째네요, 라고
믿기지 않는 말을 나누고는, 정담으로 아침해를 맞았다. 야간 의기투합 얼마 뒤, 단지 밤잠없다는 이유로 끌려갔던 구 기자는 정성주 작가의
집을 다시 찾는다. 정성주 작가는 <추억>이라는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었고, 명목은 작가 인터뷰였다. 인터뷰 기사를 작성해 넘겼는데 어중이떠중이
구 기자가 쓸 리 없는 아름다운 글이 되어 나왔다. 거기에는 비밀이 있었으니, 당시 데스크이자 당대의 명문장가 조선희씨가 보기 드물게 감동받은
드라마 <추억>에 ‘의욕’을 보인 결과였다. <씨네21> 새로운 영화읽기 코너를 ‘아줌마, 극장가다’로 지은 최보은씨는 자신의 크레디트도
‘아줌마’로 바꾼다. 그리고 정성주 작가는 차기작 드라마를 <아줌마>라고 이름짓고 집필을 시작한다. 이들 정성주, 최보은, 조선희씨가 바람
부는 일산의 정성주씨 자택에서 만났다. 만남의 이유는 <아줌마>라는 드라마에 푹 빠진 탓이고, 그들이 페미니스트인 탓이고, 그들이 아줌마인
탓이다. 아참, 아저씨가 한명 더 있다. 정성주씨가 수렁에 빠질 때마다 단호한 어조를 이끌어주었다는 <아줌마> 드라마의 연출 안판석 PD다.
2000년 9월18일 방영을 시작한 <아줌마>는 인간 오삼숙의 투쟁기이다. 남편에게 ‘강간’당해 결혼해서, 시부모를 공양하고 올케의 자식을
봐주고 교수가 된 남편에게 무시당하며 살아가던 오삼숙은 한국의 그저그런 ‘아줌마’였다. 그러다 자신의 ‘과오’가 ‘착한 짓’에 있었음을
대오하고 이혼법정에 선다. 그리하여 자식을 자신의 일을 하는 것으로 거두 고 살아가는 특별한 ‘아줌마’가 된다. <아줌마>는 지식인의 위선을
까발리고, 교수 불법임용 문제 등 민감함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고, 계약동거, 외도, 맞바람 등 공공연함에도 TV에서는 볼 수 없던 소재를
다룸으로써 저자의 화제가 되었다. 소재의 선정성은 내용의 건강함으로 이어졌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3월8일 여성권익 디딤돌로 드라마 <아줌마>를
선정했다. <아줌마>는 2001년 3월20일 54회를 마지막으로 6개월의 대장정을 끝낸다.
............................................................................................................................
|정성주
아줌마|
57년생. <신데렐라> <추억>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대본. 한번의 이혼. 한 아들의 엄마.
|조선희
아줌마|
60년생. 전 <씨네21> 편집장.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를 통해 애 키우며 전쟁을 치르듯 사는 삶을 이야기함. 두 딸의
엄마. 이혼경력 없음.
|최보은 아줌마|
60년생. 전 <케이블TV가이드> 편집장. <씨네21> 아줌마 vs 아줌마 필자. 두 딸의 엄마. 두번의 이혼 경력.
|안판석
아저씨|
61년생. 한국 거대 방송사 PD.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연출. 이혼경력 없음
...........................................................................................................................
■조선희(이하 조) 모델이 된 캐릭터가 있는 건가요?
■정성주(이하 정) 먼 동생 중에 오삼숙 같은 애가 있어요. 걔 엄마가
어렵게 그 애를 키웠어요. 그러고 결혼해서는 남편 먹을 것을 따로 만들 정도로 존경하더라구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들려주는 이야기가 범상치
않은 거예요. 처음엔 강 선생이라고 했는데, 아무개, 그 다음엔 성도 떨이지고 그놈, 그 새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얘기 재밌군, 그랬죠.
<장미와 콩나물> 끝나고 남편이 아프고 그러니까 저에게 빨리 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기획서를 내라고 그래요. 기획서에는 남편이 기자였어요.
기획서를 가져갔더니 국장이 “기자는 조금 그렇지 않나” 그래요. 걔의 남편이 시간강사고 전임교수가 될 즈음이었어요. 사방 불려다니며 논리를
세워주는 논리기생, 지식기생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그 동생이 남편이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대요. “걔네들 왜 또 거기서 만나는 거야. 저번
거기 전복 상한 거 나왔는데” 그러더라나요. 뭐, 전복? 칼로 뭘 썰고 있었더라면 그 칼을 내던지고 싶다, 그 정도까지 됐다는 거예요.
충분히 재밌는 이야기잖아요. 평소에 갖고 있던 소수자, 여자가 아니라 소수자로서 충분히 대표성이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드라마 주인공으로서의
고유성도 지니고 있고. 대본 한개를 썼을 때 안판석 PD에게 보냈어요. 옛정을 생각해서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막 칭찬을 받고 고무가 돼서
다음 걸 쓰는데 죽어라고 안 돼요. 왜 힘든지 잘 몰랐는데 안판석씨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이유를 알게 됐어요. 내가 이 인물을 발언자로
보고 있더라는 거예요. 이야기 속 사람들이 아니라. 나는 역시 발언을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뭐냐면
그 사람 뒤를 잘 밟는 거예요. 그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를 보는 사람이지, 그 사람을 끌고 다니면서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큰 소리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조 이미 여러 편의 드라마를 써서 노련할 텐데, 이번 드라마는 왜 그런
강박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정 전복의지. 우리더러 따르라고 하는 가치체계에 대한 전복의지. 그 꼴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것.
■최보은(이하 최)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정성주씨는 성공한 여자잖아요.
자기 발언권을 가지고 있고. 그런데 그런 분노의 에너지가 축적되나요.
■정 우리나라는 1%와 99%로 갈라져 있어요. 99%에도 차이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99%중 상당수가 1%를
열심히 쫓아가면 자신도 1%가 된다고 생각해요. <조선일보>에서 구조조정하면 안 돼, 통일을 하면 위험해, 그러면 그 생각을 따라가려고
애를 써요. 있는 것을 지켜야 한다는 환상까지도 품어요. 하지만 나는 없어요. 99% 중 하나예요. 그래서 1%가 하는 일이 싫어요. 자기들의
가치 기준을 따르라고 하는 게, 자기네들 밑에 깔려달라고 할 때 핏대나지요.
■최 여자들은 여자로 태어나는 게 무슨 차별이냐고 생각하고 살다가, 나이가
들수록, 평균적으로 아줌마가 되었을 때 여자로 산다는 게 뭐지, 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런 게 마그마처럼 끓고 있는데 <아줌마>가 바늘구멍을
내준 것 같아요. 아, 이건 내가 억울해 해야 하는 거네, 화를 내야 하는 거네, 생각하게 해줬다는 거죠. <아줌마>는 시대를 툭 건드려서
끌고 가는 드라마가 아닐까 하면서 봤어요. 칭찬이에요. 고딕으로 써주세요.
■조 <아줌마>를 보면 지식인 계급, 중산층 이상들은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람이고, 허위의식에 가득 찬 사람들이잖아요.그런데,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은 상당히 용서가 되는, 인간적으로 용서가 되는 사람들에요. 작가 자신도 지식인이잖아요.
■정 나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지식인은 지식을 가지고 뭘 해야 하는 사람인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지식을
갖고 안 갖고를 떠나서 나는 모든 것이 다 행복하고 순조로워보이는 그런 체질이 아니라는 것, 그뿐이지요. 무슨 대답을 원하든지간에, 나는
그렇게 대답할래요.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
■조그런데 장진구의 모델이 되었다는 그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
■정 그 남편은 이 드라마를 보며 저런 아둔한 새끼가 있나, 욕한대요. 그 부부는 이혼을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장진구처럼
추운 처지가 아니라 잘 나가기 때문이에요. 그 동생은 최유미로 이행을 했어요, 이미. 방배동 요리선생집에 다니고 그래요.
■최 오삼숙의 올케 같이 일하는 여자를 왜 부정적으로 그렸느냐는 비판이 있어요.
■정 알게 모르게 착취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그 빛나는 전문직을 가지고 행세할
수 있는 사람요.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 딴사람이 더러운 것을 만져준다는 자각이 없으면 그 사람도 권력지향형 인간에 지나지 않아요. 나는
일하는 여자를 부정적으로 그린 게 아니라 그런 사고구조를 가진 사람을 부정적으로 그린 거예요. 그게 하필이면 같은 여자고 하필이면 올케인
거죠. 자기는 지 남편한테 그 일 못시키니까 헐값에 만만한 사람 시키겠다는 생각이지요. 이건 남자들이 그만큼 일하니까 여자들이 다 챙겨주고
해야 한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에요. 나도 그래요. 우리 엄마가 애들도 다 키워주다시피했고, 시어머니도 많이 써먹었어요. 나는 집으로 돌아갈
때 가끔, 그 생각해요. 내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러나, 곗돈이 생기면 갖다바치지만 입 틀어막는 것에 다름 아니거든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이런 거나 해줘야지 하는 그런 못된 심보가 나한테 있더라구요.
■조 원래 드라마 각본에는 재결합하는 걸로 돼 있다고 하던데요.
■정 아니에요. 시놉시스 쓸 때 일년 뒤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어서, 삼숙은 자기 뜻대로 살게 되었다, 이렇게 썼어요.
■조 우리 하고 싶은대로 하자면 뒤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건데요. 재결합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보여요. 이런 여지를 남겨두는
게 드라마의 긴장 때문인가요, 사회적인 파급력이 큰 드라마기 때문에 어떤 한국사회의 상식에 적당히 부합하려고 했던 건가요?
■정 극적인 긴장감이 더 클 것 같아요. 시아버지를 자세히 보세요. 재결합을 도모하게 생긴 사람인가, 아닌가. 재결합을
꾀하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그런 국면으로 돌입하게 되는 거지요.
■조 시아버지가 재결합 꿈꾸는 거는 작가도 못 말려, 그렇게 되는 거네요.
■안판석(이하 안) 드라마들을 냉정하게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따라가면서
드라마에 나타나는 이야기만을 쫓아가는 비평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자기 식에다 꿰맞춰서 드라마를 많이 봐요. 예를 들어, “재결합을 하려는데
억지스럽다” 하면, 당황스럽죠. 또 삼숙이랑 한지원이랑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냐고 그러는데, 한 대목 한 대목 쫓아 살펴보면 친구가 아니에요.
그리고 장진구의 친구관계가 왜 그렇게 개판이냐고 그러는데, 아니에요. 그냥 보통 친구예요. 으르렁거리게 되는 상황이 주어졌을 뿐이지요.
둘 중 한명 죽고 한명 사는 상황이 주어지면 자신이 살기 위해서 잔대가리를 굴리죠. 이 드라마 속에서 잔대가리가 기어나올 문맥이 되어서
기어나온 거예요. 그런데 시청자는 그런 친구관계가 어딨어, 이렇게 말해버리거든요. 연결고리들을 쫓다보면 친구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납득이 되거든요. 납득이 되게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니까. 이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하면 시청률이 60%, 70% 나올 게 뻔해도,
연결고리가 안 생기면 그렇게 만들지 않아요.
■최 마지막으로 가면서 슬랩스틱 요소가 강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 그건 당연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갈수록 처한 상황이 극악해지거나
막다른 골목으로 가요. 막다른 골목에 놓여 있는데 상식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요.
■조 시청률이 원인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안 그런 건 시청률에 도움이 안 됩니다. 시청률은 이혼하고 재결합하고 다시 깨지고 ‘이놈’이 ‘저년’하고 붙고 ‘이년’이
‘저놈’하고 붙는 게 도움이 돼요. 그걸 단순하게 해놓고 오밀조밀하게 해야죠. 그게 한국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인 것 같아요. 드라마가 지루하게
늘어진다는 비판을 봤어요. 시청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이혼했는데, 이제 재결합하겠구나 하고 미리 짐작하기 때문이죠. 재결합
하려면 빨리 하지, 지금이 몇횐데 아직도냐, 이렇게 생각하는거예요. 시청률 올리려면 재결합, 재재이혼, 재재결합, 이러면 많이 올라가죠.
전개가 빠르다 그러고. 그런 식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드라마가 아니죠.
■최 여자의 임신으로 가는데 작가가 임신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요?
■정 잠자기 전, 잠잔 뒤, 애배기 전, 애밴 뒤, 애 낳은 뒤. 하필 여자라면, 여자에게는 전기가 되죠. 긍정적인
전기만은 아니라서 남의 입의 것 꺼내서 지 새끼 입에 넣어주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겠지만.
■최 봉황의 깊은 뜻은 없는 건가요? 쌍둥이 임신이라면서요.
■안 기획서에 쓴 말에 허위의식이라는 게 있어요. 가면을 벗어야 허위의식이 드러나는데, 지식인은 교묘해서 가면이 잘
안 벗겨져요. 무지하게 당황스러운 국면에 빠뜨려야 가면이 벗겨지죠. 처녀가 애를 뱄는데, 그것도 쌍둥이를 뱄다, 이렇게 파국적인 면으로
들어가야 껍질이 자꾸 벗겨지면서, 쓸 말이 나옵니다.
■최 저는 몇몇 대목들, 심혜진이 약혼은 했지만 처녀성은 보존했다고 암시하는 대목, 정재환의 역할이 수컷으로서 미묘한
것 등에서 도덕률에 영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정 오히려 뒤집고 싶은 마음이에요. 정재환의 역할을 키우지 않은 건, 현실적으로 드라마톤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마초로 비칠까봐 그런 이유도 있어요. 심혜진이 처녀다 하는 건, 웃기잖아, 웃기라고 그런 거예요. 말도 안 된다고, 그게
무슨 자각이라고. 그러나 이 여자가 마음속 깊이 자랑으로 생각하냐면 그건 아니거든요. 해보고 싶어 죽겠는데, 외국 나가서는 에이즈 걸릴까봐
그 짓을 안 하고, 이게 얼마나 웃기냐고 슬쩍 깔아놓은 거죠. 장진구가 너의 순결을 지켜주지, 거 웃기잖아. 뭘 지켜줘? 그런 말들, 횡행하는
게 너무 웃겨서, 한번 하게 해보려고요.
■최 이 드라마에서 카타르시스는 오삼숙의 통쾌한 법정 승리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저도 얼마
전에 도장을 찍었는데,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법이 너무너무 불리하더라구요. 어떻게 생각하면 남자들에게 겁주는 효과는 있었겠지만 법적으로
불리해서 이혼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질투나더라구요.
■정 오삼숙한테 그런 행운이 있으면 안 돼요? 의지가 확고하고 단호하고, 단순하고, 그런 미덕이 있잖아요, 오삼숙한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잘 못하죠. 장진구는 이혼 말이 나오자 애는 어떻게 될까, 나는 이렇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한참 하는데.
그럼 못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해야 돼, 그러면 빨리 되는 거고. 법적으로 알아보니까 오삼숙이 유리하더라구요. 시댁에서 무시당했다는
확실한 증거들, 그거는 재판상 유리하게 작용해요. 질투난다고 하니까 보람을 느끼네요.
■조 이혼녀와 이혼녀의 자식들에 대해서 특별하게 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이혼의 경우에는 모두 오삼숙 편이고,
장진구에게 돌을 던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이혼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혼녀를 독립적이고 당당한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그것만
해도 나는 여성운동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기를 존중하는 과정을 배워가는 것, 그게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 없는 사람, 99%에 속해 있는 사람이 오삼숙처럼 되려면 무시당했다는 것을 자인을 해야 해요. 나 잘살고 있어,
라고 생각하면 안 되죠. 나는 당당함이라든가 그런 면보다는 이런 말들이 게 기억에 남아요. 내가 하지 않고 오삼숙이 한 말 같은데, “나는
무시당해도 싼데” 이런 말. “내가 잘못 살았지” 이런 말. 그 단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게 싫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
싫은 것 안 할래, 그렇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최 <신데렐라> <추억>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이렇게 오면서 젊은 가족간의 문제, 여자간 남녀간의 문제, 그런
생각이 점점 더 발전해왔어요. 그 전의 드라마는 타협이 있었거든요. 재결합을 한다든지, 또는 뭐, 호텔 갔는데 섹스를 안 한다든지 하는
그런. <장미와 콩나물>에서 예리해졌다고 그럴까. 작가의 의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건가요? 앞으로도 <아줌마> 수준의 사회의식을 가진 드라마를
기대해도 될까요?
■정 내가 드라마를 통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예전엔 일단 자신이 없었던 거죠. 직업의식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되는 대로 하지 뭐, 그런 게 있었어요. 애들이 독립할 때까지는 이 일로 벌어먹어야 될 텐데 이 정도의 직업의식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달라졌다고 할까요. 앞으로 드라마도 그럴 건지 어쩐지는 자신할 수 없어요. 나는 의식있는 작가 뭐, 그런 게 아니에요.
직업의식이 달라졌다고 해야죠.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자 하는.
■조 수다스럽게 얘기 많이 하는 코믹드라마는 계보를 올라가면 김수현 드라마, 김수현 드라마가 워낙 넓으니 어떤 부분,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가 있을 듯한데, 그건 가부장적 아버지, 순종적인 아들이 나오는 드라마잖아요. 세대가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계보 내에서도. 10년 전이었다면 이런 드라마 쓰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대중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안 10년 전이라도 되었을 것 같아요. 일문일답을 착실히 해나가면 돼요. 이 사람이 이러면 얘가 이러겠지 하는 걸
다 쫓아가잖아요. 다 쫓아가다 보니까 이 여자가 시아버지 따귀를 때려도 되겠지 하면 얼떨결에 “네” 하는 순간이 만들어지게 마련이에요.
10년 전에도 됐을 것 같아요. 제 단계를 밟아주면.
■최 이 드라마 하는 중에 이혼율이 높아졌다는 게 사실이에요?
■안 그 사이 이혼통계가 나왔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조 근데 이게 좀 재미없게 사는 여자들로 하여금 한번씩은 돌아볼 생각을 하게 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그게 통계
수치상으로 백업이 되든 안 되든간에.
정리 구둘래/ 객원기자 anyone@cartoonp.com
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