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출생, 1951년 인민군 31사 정찰대원 소속으로 철원지구 정찰도중 유엔군에 체포, 1952년 15년형 확정, 1953년
간첩죄가 추가되어 사형선고, 1954년 무기감형, 1995년 석방, 2000년 북송.’ 김선명의 삶은 이렇게 요약된다. <선택>은 이중
51년에서 95년까지 김선명씨의 수감생활만을 그린다. 홍기선은 “핵심은 감옥 안을 얼마나 잘 그려내는가에 있다”고 말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맺는 특별한 인간관계들이 극영화로서 <선택>이 갖는 매력이다. 기본적으로 강압과 인권유린을 일삼는 사회와 그에 맞서는 사람들의 대립관계를
그리지만 단순한 선악대결은 아니다. 그는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시대의 희생양이 된 현실에 주목하며 성자도, 현자도, 투철한 공산주의자도
아닌 동지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강압에 저항하는 다분히 평범한 인간 김선명에 주목한다. 물리적 폭력에 좀처럼 반발하지 못하는 지식인들과
달리 화가 나면 완력을 쓰는 일도 서슴지 않는 김선명은 교도소의 인권유린을 보며 점점 의지가 강해진다. 전향서를 받기 위해 고문, 회유,
협박을 일삼는 이들도 따지고보면 불쌍하다. 때로 법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때로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가해자가 된 그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김선명의 삶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70 나이에 석방돼 치매에 걸린 90
노모를 만나는 장면이다. 김태일 감독의 다큐멘터리 <풀은 풀끼리 늙어도 푸르다> 등에서 이 장면을 만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은 다큐멘터리
자료화면을 그대로 살릴 생각이다.
이미 장기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여러 편 나왔는데 굳이 극영화로 김선명의 삶을 그리려는 까닭은 45년이라는 시간을 다큐멘터리로는 복원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언뜻 보면 답답하고 변화가 없을 듯한 감옥생활이지만 그 속에 가공해서 만들 수 없는 대단한 드라마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노인까지 연기할 중견연기자들을 기용할 생각이며 감옥장면은 세트를 지어 촬영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감옥세트를 짓자면 순제작비가 족히 8억원은 넘어야 한다. 현재 영진위에서 지원받기로 한 금액은 3억7천만원. 4억원
이상을 외부에서 투자받아야 하는데 영화의 성격상 소액투자자를 대거 참여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영진위 지원금을 받자면 늦어도 9월에는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홍기선 감독의 독립프로덕션인 영필름은 소액출자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문의: 02-335-6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