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월27일, 코펜하겐의 외곽, Avedøre에서 라스 폰 트리에가 덴마크의 영화인들에게 쓴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제작은
늘 미스터리의 베일에 싸여 있다. 스튜디오, 아티스트 그리고 제작 환경들은 항상 외부인들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하기 위한 모든 노력들을 기울여왔다.
그것은 움직이는 이미지가 마술과 동일시되던 시대의 유물임이 틀림없다. 모두가 알듯이, 마술가들의 비밀은 항상 숨겨져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마술의 트릭들은 아주 고전적인 것들이다. 실질적으로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 그리고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현저히 무의미한 것들이다….’
라스는 ‘필름은 그렇지 않다’라고 다시 한번 선언했다. 영화는 너무나 중요하게도 고전적으로 불가능했던 개인의 표현형식과 광범위한 소통을
다루고 있으므로 색다른 자각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영화, TV, 이미지, 사운드 등 이 모든 메시지들의 발달은 문명화의 진전과 동격인
것이므로 이것들이 몇몇 선택된 이들의 손에 의해 먼지 쌓인 방에 갇혀 이루어지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기술의 발달이 곧 모든
이들이 아주 싼, 하지만 완벽히 프로페셔널한 장비로 스스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기를 가져다주게 되었고 테크놀로지가 이미 스스로 시작한
민주화를 더 한번 확인하는 일, 그것은 모든 정보와 에너지의 공유에 있다고 역설했다. 배우들, 기술스탭들, 컴퓨터전문가, 작가, 음악인,
광고인들이 모두 모여 누구에게도 서로 지배당하지 않으면서 더 위대한 미디엄의 탄생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젠트로파는 그렇게 Filmbyen이라는 살아 있는 공간을 탄생시켰다. 젠트로파는 1992년 라스 폰 트리에와 프로듀서 Peter Aalbæk
Jensen이 <유로파>의 성공에 힘입어 50:50의 지분으로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TV 시리즈, 저예산영화는 물론 고예산영화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냈고, 수많은 국제적인 공동제작의 결과로 현재는 유럽 전역의 몇몇 메이저 프로덕션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 지금껏 50편이
넘는 장편을 만들어왔고 현재는 매년 3천만달러의 매출액을 올리고 있다. 덴마크는 현재 일년에 20∼25편의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중
10편 정도가 이 필름 타운 영화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전세계에서 3천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두배에 해당되는
15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어둠 속의 댄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소득을 올리고 있다.
라스 폰 트리에가 선언한 대로 필름비엔은 폐쇄적인 독점을 피하고 모든 것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다른 메이저 경쟁자들과 그 스타일을
달리하며 성장을 추구해왔고, 1999년 현재의 군기지로 옮긴 뒤 그가 밀레니엄이 요구하는 비전이라고 웅변했던 ‘오픈 필름 타운’(OPEN
FILM TOWN) 프로젝트는 현실화하여 현재 21개의 영화관련 업체가 뭉친 필름 타운으로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