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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영화에 대한 모든 것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 제프리 노웰 스미스 엮음 / 이순호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영국에서 1996년 출간된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는 2005년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다. 실을 꿰매서 제본하는 사철 방식으로 만들어진 양장본이었다. 튼튼하고 품위 있는 책이다. 하지만 가격이 높다 보니 구입을 망설이는 독자를 위해 이듬해 보급판도 나왔다. 사(史)는 시대마다 저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는 지역과 장르를 두루 아울러 기술된 영화사의 교본이다. 제프리 노웰 스미스가 책임 편집한 이 책은 필자만 80명에 이른다. 데이비드 보드웰, 릭 울트먼, 비비안 소브첵, 수잔 헤이워드, 찰스 마서, 토머스 엘새서, 토머스 샤츠 등 실로 화려한 목록이다. 천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도 한권 분량의 영화사로 유례없다. 물론, 유명한 저자들이 동원되고 두껍다고 좋은 영화사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필자의 관점이 충돌하거나 중복 서술될 우려도 크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는 이런 위험 요소를 잘 피해나가면서도 일관된 체계를 갖추었다. 답은 필자들의 책임감과 영화에 대한 열정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의 구성은 총론, 3장으로 구성된 본론, 결론으로 되어 있다. 본론은 1장 ‘무성 영화’(1985~1930), 2장 ‘유성 영화’(1930~1960), 3장 ‘현대 영화’(1960~1995)로 나뉜다. 영화의 역사가 다른 예술에 비해 짧지만 영화 발전의 놀라운 속도 때문에 세계 영화사의 서술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모든 사(史)가 그렇듯, 영화사도 선택과 배제가 필연적인 원리다.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의 책임 편집자 제프리 노웰 스미스도 총론 서두에 이 점을 강조한다. 복잡한 영화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 버거운 일이며, 어떤 것은 전면에 부각시키고 심지어 어떤 것은 제외시켜야 하는 고뇌를 피력한다.

제프리 노웰 스미스가 밝힌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의 원칙은 세 가지다. 첫째는 ‘시네마’(cinema)라는 용어를 선택한 의도다. 시네마는 개별 작품, 산업, 관객, 스타, 제도까지 영화라는 매체와 연관된 모든 것을 담기 위해 선택된 용어다. 둘째는 대중예술로서 시네마의 역사를 중점에 두는 것인데, 이는 20세기 예술로서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전 지구적인 단일 현상으로서의 영화 역사를 다루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한 세계의 영화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기획 의도로 완성된 영화사이기에 장르, 영화사조, 영화이론, 기술, 산업이 골고루 기술되어 있다.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는 배우, 포스터, 영화 스틸이 포함된 도판 목록만 따로 뽑아도 엄청나다.총론에 도판 작업에 대한 특별 언급이 있을 정도다. 영화 스틸은 ‘결정적인 순간’을 보여준다. 영화를 알고 도판을 보면 얼마나 정성껏 도판 작업을 했는지 실감하게 된다. 박스 형태로 편집된 개별 배우•감독론은 짧은 분량이지만 명료하고 명쾌하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 부분만 보아도 지루하지 않다.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는 영화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당연히, 영화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은 없지만 이 책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재출간되어야 할 영화서적 목록 맨앞에 놓여야 할 책이다.

당신이 당장 위의 책을 읽을 수 없다면, <할리우드 장르> 토머스 샤츠 지음 / 한창호, 허문영 옮김 / 컬처룩 펴냄 를 추천합니다

다른 영화사 서적과 비교하여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참여한 필자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시각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국가와 장르를 오가는 것은 물론 기술의 발전사도 충실히 다루고 있다. 그렇게 ‘경계’를 넘나드는 관심을 장르쪽으로 넓힌다면 토머스 샤츠의 <할리우드 장르>를 추천한다. 웨스턴, 갱스터, 스크루볼 코미디, 그리고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관점에서 써내려 가는 특별한 영화의 역사가 바로 거기 있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이라는 ‘신화’와 어떻게 결부되는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