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출시된 재즈영화 3편 - <라운드 미드나잇> <버드> <델로니어스 몽크>
때론 달콤하고, 때론 가슴을 저미는 재즈의 선율 가득한 걸작영화 세편이 나란히 DVD로 선을 보였다. <라운드 미드나잇> <버드> <델로니어스 몽크>(이상 워너 홈비디오)가 그것. 비디오로 출시된 바 있는 <버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DVD라는 특성에 맞게 돌비 5.1채널 사운드를 제공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을 좀더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게다가 이들은 재즈의 황금기로 불리는 비밥 시대의 거장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 피아노의 명인 버드 파웰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재즈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그리고 뭉클하게 한다.<라운드 미드나잇>, 버드 파웰의 인생유전
1959년 천재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은 가슴속에 가득한 절망감을 부여안고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떠나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사실 비슷한 시기 케니 드류, 덱스터 고든 등 많은 재즈 아티스트들 역시 유럽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또 근거지를 옮기지는 않았지만 다른 재즈 음악가들도 1년 중 상당 시간을 유럽에서 공연차 보내곤 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50년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미국에선 로큰롤이 주류 대중음악으로 자리잡았고, 흑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한 자각이 심화됨에 따라 흑백의 갈등도 거칠어졌다. 반면 유럽의 상황을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재즈가 보급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고 스트라빈스키, 라벨 같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재즈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던 것. 따라서 이 시기 상당수의 미국 출신 재즈 음악인들이 가슴 뜨겁게 환대해주는 유럽 청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버드 파웰이 미국을 떠난 이유는 좀 달랐다. 1950년대 초반 미국에서 백인의 구타로 뇌 손상을 입은 뒤 전기쇼크 치료를 받는 등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겪었던 그는, 끝내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술과 마약 속에 빠진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러한 ‘추락’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파리행은 새로운 희망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끝없는 내리막길의 막바지에 다름 아니었다. 파웰의 파리 체류 시절의 삶을 소재로 삼은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1986)은 이러한 그의 ‘인생유전담’답게 고국인 미국감독이 아니라 프랑스의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타베르니에가 재창조한 이 영화는 작품의 모델인 파웰뿐 아니라 주연으로 출연한 덱스터 고든,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나 멀리 대서양 넘어 방랑해야 했던 재즈라는 음악의 기구한 운명도 함께 그린다는 점에서 묘한 느낌을 준다.
<라운드 미드나잇>의 주인공은 군대 시절 백인한테 머리를 얻어맞은 뒤 생긴 우울증 때문에 항상 마약과 술에 찌들어 있는 데일 터너. 미국에서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과 함께 비밥 시대를 이끌었지만 항상 우울증에 시달리며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미끄러지던 그는 1959년 ‘따뜻한 눈길이 있는’ 파리로 날아가 조그마한 클럽에서 음악 활동을 벌인다. 여전히 만취상태로 살아가던 터너는 어느 날 거리에서 파리지앵 프란시스를 만나게 된다. 가난한 포스터 화가 프란시스는 클럽에 들어갈 돈이 없어 밖에 서서 비를 쫄딱 맞으면서도 그저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에 만족하는 재즈광. 특히 그는 예전 터너의 공연을 보기 위해 군에서 탈영했을 정도로 그의 연주를 사랑한다. 우연한 기회에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와 친구가 된 그는 수렁에 빠진 터너를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펼치게 된다. 항상 행려병자 취급당해 병원에 실려가 있는 터너를 번번이 부축해오던 그는, 아예 터너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가족처럼 돌보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북돋우려 한다. 이 이야기는 버드 파웰과 그의 팬이자 친구인 프란시스 포드라라는 프랑스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타베르니에가 재창조해낸 것. 타베르니에는 주인공을 색소폰 연주자로 바꿨지만, 주인공 터너의 대사 속에 여러 차례 “버드 파웰과 함께 연주했었지” 같은 대사를 집어넣고 엔딩 크레디트에 “버드 파웰과 레스터 영에게 바친다”라는 문구를 새겨넣어 그에 대한 오마주를 분명히 했다.
덱스터 고든, 천재를 연기한 천재
<라운드 미드나잇>이 흥미로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우선 주인공 데일 터너 역으로 실제로 색소폰의 달인인 덱스터 고든(1923∼90)이 출연한다는 점. 영화배우가 아닌 그가 버드 파웰의 분신으로 스크린에 등장한 것은 “배우에게 음악가 연기를 맡기면 관객은 이를 다 알아차린다”는 타베르니에 감독의 생각이 반영된 탓이기도 하지만, 현실 속 고든의 삶이 파웰의 그것과 비슷한 때문이기도 하다.
1950년대 마약복용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해 감옥살이까지 했던 그는 출옥 뒤 놀라운 의지로 재기의 발판을 만들며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1962년 돌연 유럽으로 떠난 그는 14년 동안 고국을 등진 채 음악 활동을 펼쳤다. 그는 자신이 연기한 <라운드 미드나잇>의 터너처럼 1976년 유럽에서 돌아온 뒤 미국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이 영화를 마친 뒤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색소폰 소리를 울려주는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이 작품에서 그가 펼친 연기는 ‘기적적’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오랜 세월 풍파와 인간 삼라만상을 모두 겪은 듯 터너의 역할을 수행했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그는 연기자가 아니라 음악가였지만 그 어떤 연기자도 해낼 수 없는 우아하고 지혜로우며 고통받는 연기를 훌륭하게 해냈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생각하며 대사를 하는데, 그의 말 속에는 정말 뭔가 있는 듯하다. 때문에 ‘프란시스 네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사랑스러워’ 같은 평범한 문장을 이야기해도 무언가 있어보인다”고 평했다. 그의 연기는 너무 자연스러워 극중 터너의 절망과 고독은 고든 본인의 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술에 취해 “한잔만 더-”를 주절거리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알코올중독자를 연상케 하지만, 막상 색소폰의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연주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는 보는 이의 숨을 탁 멎게 할 정도로 긴장감 있는 연주를 펼쳐보였다. 또 자신이 연주하는 테너 색소폰처럼 탁하지만 강렬한 느낌의 음성으로 “난 투명인간인가 봐”, “모든 게 다 피곤해, 음악만 빼고”, “개성없는 나무는 키우지 말게, 자네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잘 키우게나” 등의 대사를 읊조리는 그의 모습은 마치 은둔하는 수행자를 떠올리게 한다. 덕분에 그는 이례적으로 1987년 오스카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는 화려한 재즈 연주자들이 한꺼번에 화면에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이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해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을 비롯, 프레디 허바드(트럼펫), 바비 허처슨(비브라폰), 론 카터(베이스), 빌리 히긴스(드럼), 로넷 매키(보컬), 존 매클러플린(기타), 웨인 쇼터(색소폰), 피에르 미셸로(베이스) 등이 고든과 함께 더없이 멋진 연주를 펼친다. 특히 행콕은 델로니어스 몽크의 명곡 <라운드 미드나잇>를 변주한 음악을 수시로 들려줘 영화 전반에 은은한 벨벳 천을 두른다. 뉴욕 클럽 업주로 출연하는 재즈 애호가 마틴 스코시즈를 만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밋거리.
당신이 재즈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뭐니뭐니 해도 <라운드 미드나잇>의 진정한 주인공은 덱스터 고든, 버드 파웰 같은 연주자나 파리라는 도시가 아니라 바로 재즈 음악 그 자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재즈광을 위한 영화라기보다 에버트의 이야기처럼 “당신이 재즈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이런저런 설명을 구구하게 늘어놓는 대신, 음악처럼 미드 템포로 전환되는 영상과 무거운 외로움의 질감을 가진 색소폰의 공명을 통해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진실한 음악이란 한 영혼의 외로운 떨림에 다름 아니며 이는 끝내 소진될 수밖에 없는 유한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듯 말이다.
이 영화가 8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는 80년대에 이르러 재즈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신고전주의’적인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은 듯 보인다. 미국에선 이와 동시에 윈튼 마셜리스 같은 정격 연주가 각광을 받았고 비밥, 하드밥의 영웅들이 부활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재즈 유전(流轉)’을 다룬 <라운드 미드나잇> 같은 영화까지 만들어지게 됐던 것이다. 재즈라는 음악에 대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다수 ‘관객’이 아니라 헌신적으로 열광하는 한명의 ‘친구’가 있었던 프랑스에서 말이다.
<버드>, 모던 재즈의 대가 찰리 버드 파거의 일대기
<버드>(1988)는 모던 재즈를 완성한 찰리 ‘버드’ 파커(1920∼55)의 파란만장한 삶을 연대기 방식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남부 캔사스시티 출신의 파커가 어떻게 뉴욕 재즈 신을 정복했고 유럽 대륙에서까지 스타로 인정받는 색소폰 연주자, 즉 ‘버드’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가, 아울러 그 영광의 금자탑이 어찌하여 서서히 무너졌는가를 어둠 짙은 푸른빛 영상에 실어 보여준다. 이스트우드는 파커가 명백한 인종차별적 환경 속에서 백인 부인 챈과 결혼했다는 사실 등을 보여주며 그가 자신을 둘러싼 외적 환경에 굴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고 그려낸다. 이러한 그를 파괴한 것은 마약이나 술이 아니라 아이로니컬하게도 주체할 수 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었다. 무모할 정도의 도전정신과 새로움에 대한 갈망은 그를 공황상태에 빠뜨렸고 마약과 술은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나는 개혁가인데 자네는 순교자가 되려 하는군. 하긴 순교자가 더 기억되지”라는 디지 길레스피의 대사처럼 그는 음악과 삶을 완전히 동일시했다. 하지만 그가 음악적으로 높이 날아갈 때 그의 육신은 땅바닥을 버둥거렸다. 34살로 사망한 그의 주검을 보고 부검의가 65살로 판단했을 정도로. <버드>는 “음악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음악의 영화”라는 한 평론가의 이야기처럼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음악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삶의 자취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포레스트 휘태커와 완벽하게 재가공된 그의 미발표 작품도 끝내 날개를 달지 못하고 길바닥에 처박힌 ‘버드’의 삶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데 한몫을 한다.
<델로니어스 몽크>, 흑백화면에 담긴 천재 뮤지션의 기행
“모던 재즈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일 뿐 아니라 바르톡 이후 최고의 작곡가”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델로니어스 몽크(1917∼82)의 다큐멘터리 <델로니어스 몽크>(1989)는 일단 진귀함에서 인정받는 작품. 67, 68년 독일의 한 TV를 위해 찍었던 흑백 필름을 통해 우리는 전설 속의 인물이 실제로 말하고 연주하며 생활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다큐라는 특성상 그의 연주여행이나 녹음 작업을 주로 담고 있지만, 재즈팬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그의 괴팍한 행동 또한 여러 번 등장한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거나 유럽 여행을 다니며 빈 콜라병을 들고 다니거나 하는 그의 기행(奇行)의 의학적 근원은 심각한 우울증과 자아도취, 정신분열에 있었지만, 어쩌면 음악으로 발산해버린 그 내부의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앨범을 녹음할 때나 런던의 재즈 페스티벌에서 자주 신경질을 부리던 그가 막상 연주에 들어가자 피아노에 마법을 걸듯 오묘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몽크라는 인물의 천재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타임>의 표지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음악성을 인정받던 천재 피아니스트가 브루클린의 한 전망 좋은 아파트에서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음악만이 존재하는 먼 우주로 날아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숨결을 움켜쥐려 애쓰는 작품이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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