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이 자회사인 ‘씨네21아이’(씨네21i)를 통해 영화 콘텐츠 디지털 유통사업에 진출한다. 이는 씨네21이 국내외 영화 저작권자와 계약을 맺어 영화 디지털 판권을 유통하는 것이므로 추후 국내외 다른 영화로도 유통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불법이 무감해진 시대, 영화 합법 다운로드의 길은 열릴 수 있을까.
‘부가판권 시장의 몰락’이라는 신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심지어 불법 다운로드가 횡행하는 이 시절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도 못한다. 지난해 기준 한국 영화산업은 극장 매출이 83.7%, DVD나 VHS 등 부가판권시장 매출이 11.4%의 구조를 이루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영화산업의 수익구조가 극장이 30%, 부가판권시장이 70% 정도임을 감안하면 그것은 곧장 현재 한국영화 시장의 위기와도 직결된다. ‘와이드 릴리즈’가 보편화된 현재 극장가에서 개봉 첫주 만족스런 ‘대박’을 터트리지 못한다면 바로 마이너스 수익률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한때 전국에 4만여개나 되던 비디오·DVD 대여점이 이제는 겨우 3천여개에 그치고 있고 그마저도 계속 줄거나 겨우 연명하고 있는 정도다. 영화를 통한 캐릭터, 게임 산업이 전무한 국내 영화산업의 가장 대표적인 부가판권시장이던 비디오·DVD 시장은 오프라인상에서의 불법DVD 복제 판매, 그리고 온라인 불법 다운로드의 확산으로 더이상 ‘시장’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끝을 알 수 없는 국내 부가판권시장의 장기 침체는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씨네21아이가 2월부터 오픈할 예정인 동영상 다운로드 서비스 즐감(Zlgam)과 권리자를 위한 시스템인 DCMS(Digital Contents Management System)는 이 같은 영화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중요한 지지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DCMS? 즐감?
지난 1월21일 오전 11시, 씨네21과 제협은 용산아이파크몰 파크컨벤션홀에서 ‘영화부가판권 시장확대를 위한 디지털 콘텐츠 유통사업 및 관련시스템 설명회’를 열었다. 씨네21은 지난해 10월 문화관광부로부터 디지털 저작권 및 재산권에 대한 신탁단체로 지정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와 총괄 운영 대행계획을 맺고 디지털 영상콘텐츠 유통사업을 준비해왔다. 제협의 이준동 부회장은 “불법복제가 만연한 온라인 시장의 정화는 물론, 불법 다운로드를 합법적 유료 온라인 유통으로 양성화해 현재 당면한 한국영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더불어 이날 행사를 지켜본 시네마서비스의 이원우 배급유통팀장도 “기대가 80%, 우려가 20%”이라고 전제한 뒤 “개인적으로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온라인 플랫폼의 역할, 다운로드 서비스의 모양새 등이 구현된 것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날 씨네21아이는 무분별한 불법 다운로드로 고사 위기에 처한 영화 부가판권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개발한 디지털 영상 콘텐츠 통합관리 시스템을 공개했다. DCMS라 명명된 이 시스템은 영상 콘텐츠 판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콘텐츠 관리 기능, 복제 방지를 위한 DRM, 수익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산 시스템 등을 모두 한곳에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더불어 씨네21아이 김준범 이사는 “불법복제가 판치다보니 저작권자가 자신의 영화가 불법으로라도 얼마나 유통됐는지 알기 어려운 실정인데, 이처럼 투명한 유통시스템이 도입되면 저작권자 역시 향후의 사업계획을 설계하는 데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DCMS는 영화를 감상하는 유저와는 별 관계없는 시스템이다.
이에 반해 즐감은 바로 소비자들이 직접 영화를 내려받아 보는 서비스의 명칭이다. 현재 씨네21아이는 인터넷 P2P 사이트나 웹하드, 포털 사이트에서 접할 수 있던 기존 동영상, 그러니까 최근 불법복제 소스의 대부분인 DVDrip 버전보다 화질이 월등히 좋은 고화질 영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반인이 구하기 힘든 HD급 소스를 웹하드, P2P에도 유통시킴으로써 초고화질을 원하는 사용자의 요구에 의해 다운로드 받은 뒤 결제, 감상할 수 있다. 한번 다운받으면 해당 PC에서 10회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직장에서 다운받은 영화를 집에서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더불어 보통 DRM으로 보호받는 콘텐츠들은 전용 플레이어가 있어야 했기에 범용성이 떨어졌지만, 즐감 사용자는 해당 동영상 파일 자체에 플레이어가 내장돼 있어 클릭만으로 자체 플레이어를 구동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씨네21아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차세대 웹 플랫폼 실버라이트(silverlight)를 바탕으로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실버라이트는 플래시가 보여주는 인터랙티브한 기능과 비주얼한 화면 구성을 모두 지원함은 물론, HD급 화질 지원으로 한 단계 진일보한 영상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다. 씨네21아이는 실버라이트를 기반으로 DCMS를 통해 영상 콘텐츠의 저작권, DB, 정산 시스템 등을 지원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실버라이트에 대한 모든 솔루션, 기술 제공 및 교육, 보안 솔루션 등을 제공하게 된다. 이에 대해 씨네21아이의 김준범 이사는 “실버라이트가 현재까지 최상의 동영상 서비스 솔루션이라 판단했다”고 말한다.
P2P, 웹하드 업체들과의 윈-윈은 필수
사실 불법 다운로드를 양성화하는 문제에 있어 기존의 P2P, 웹하드 업체들과의 긴밀한 대화는 절실하다. IT 강국으로서 가지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환경은 은연중에 불법의 거대한 길을 터놓았고(가령 프랑스처럼 이런 문제를 고심하지 않던 나라가 최근 전송속도 등 인터넷 환경이 개선되면서 불법 다운로드가 점차 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일부 윤리의식이 결여된 온라인 서비스업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영화 돈 내고 보면 바보’라는 식의 불법복제가 일상화됐다. 심지어 많은 유저들은 그러한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다운로드받았기 때문에 자신은 전혀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믿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비용은 조금도 권리자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이준동 대표는 “지금껏 정부의 단속의지도 부족했다”며 “시장구조를 왜곡하는 온라인 서비스 업체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계속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합법 다운로드로 가는 길에 있어 불법 다운로드가 수익모델이 돼왔던 P2P, 웹하드 업체들의 건설적인 참여는 중요하다. 유저들은 그동안의 자신의 패턴, 기존의 관행을 쉽게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씨네21아이는 이날 사업발표회에서 팝폴더, 이지드라이브, 폴더플러스, 네오폴더, 다이하드, 짱파일, 위디스크 등 주요 업체들과 함께 불법복제에 대한 공동 대응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기존의 P2P, 웹하드 업체들이 불법 다운로드 확산의 ‘공공의 적’처럼 규정돼왔던 것에 비하면 시장점유율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위 업체들의 사업 참여는 꽤 의미있는 일이다. 팝폴더를 운영하고 있는 아이팝미디어의 임태형 대표는 “다른 업체들도 합법 다운로드라는 대의에 공감하지만 쉽게 앞에 나서질 못하는 것 같다”며 “이번에 참여하지 못한 업체들을 굳이 ‘거절’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타 업체의 참여에 대해서도 “P2P, 웹하드 시장에서 상위 랭킹에 있는 8개 업체가 매달 모임을 꾸준히 갖고 있는데,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고 조만간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는 희망적인 견해를 보였다. 물론 문제는 수익이다. 불법과 합법을 떠나 모든 업체들이 기존 수익에 지장을 주지 않는 쪽을 원하기 때문이다. 임태형 대표는 “지금껏 업계 관행 속에서 매출액 중 저작권료 지불이 큰 영역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그게 마이너스가 되지 않도록 좋은 해결점을 찾고, 합리적인 시장구조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이라는 대의가 자리잡아가는 마당에서 최선의 생존전략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합법적 유료시장이라는 정(正)방향을 향해 나아가고는 있지만, 어떤 선례를 찾을 수 없기에 이러한 공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시네마서비스의 이원우 팀장도 “우려 아닌 우려라고 한다면, 기존의 인터넷 VOD 서비스 업체들이나 P2P 업체들의 호응 여부와 비용문제 해결 등 이후 진행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잡음들을 조정하는 게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 말했다.
거대한 온라인 영화시장을 향한 꿈
그렇다면 즐감 서비스를 통해 어떤 영화를 볼 수 있는 걸까. 현재 제협 회원사가 제작한 모든 영화, 영화진흥위원회 펀드가 지원한 모든 영화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제협 회원사가 아닌 일부 한국영화들과 해외영화들은 서비스되지 않는다. 하지만 씨네21아이와 제협쪽은 ‘거의 모든 개봉영화’들을 끌어안을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최근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 대표는 미국의 모든 메이저 영화사를 끌어들여 온라인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사업을 도모 중이다. 애플의 콘텐츠 창고인 아이튠스를 통해 수많은 영화 콘텐츠를 확보한 뒤 이를 일반인에게 온라인으로 대여하는 사업으로 이십세기 폭스, 워너, 미라맥스 등 할리우드의 주요 영화사들 대부분이 여기 동참할 예정이다. 애플의 디지털 저작권 관리 기술을 적용하게 돼 온라인 불법 복제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되기에 메이저 영화사들은 순순히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바야흐로 애플이 음반업계에 이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까지 설득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제협 이준동 부회장은 “우리의 사업모델과 거의 유사하다. 장기적으로 우리도 모든 한국영화들이 이 플랫폼에 탑재되기를 희망한다”며 “아이튠스와의 전략적 사업제휴도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부가판권시장 문제에 언제나 거론되는 홀드백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아직 결론난 것은 없지만, 소장할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소장한다고 보기 때문에 홀드백을 최대한 당겨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와 더불어 씨네21아이는 극장 개봉영화들로 한정되지 않는 좀더 거대한 콘텐츠 시장을 꿈꾸고 있다. 판권을 가지고 있지만 수지타산 문제로 개봉이나 출시를 마냥 미뤄두고 있는 영화들, 아무래도 관심을 덜 받을 수밖에 없는 단편영화나 다큐멘터리 작품들, 시장성이 없어 국내 수입이 불가능해 보이는 영화들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지난해 1회 핑크영화제를 통해 일본 핑크영화들을 소개하며 좋은 반응을 끌어냈던 주희 프로그래머는 최근 씨네21아이쪽과 구두로 판권 계약을 했다. “영화제 하면서 판권문제 같은 건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데, 핑크영화들이 극장 개봉은 무리라도 이런 방식을 통해서라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핑크영화제는 남자가 입장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이런 방식이라면 남자 관객도 핑크영화를 ‘즐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준범 이사도 “장기적으로는 극장 개봉과 무관한 영화들의 방대한 리스트를 함께 꾸리는 게 목표”라며 “미개봉 영화들을 적극 ‘발굴’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라 말했다. 합법 시장 형성은 물론 영화문화라는 책임감도 잊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처럼 본격적인 런칭을 앞두고 있는 씨네21아이와 제협의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 무려 9천억원에 달하는 불법 영상 복제 시장의 기형적, 불법적 구조 속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길 기대해본다.
사진 설명: DCMS는 매출 및 수익 정산 내역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서비스 업체와의 투명한 정산 및 권리자에 대한 투명한 분배가 가능하다. 더불어 모든 서비스별, 작품별, 장르별 통계 및 차트를 제공하여 각종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서비스를 위한 영상 디지털 파일부터 각종 영화 관련 정보, 메타 DB, 기사 및 이미지 정보도 제공하여 서비스 업체에게 효율적인 서비스를 위한 모든 기능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