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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어깨너머 감독 되기 [2]
이종도 2006-02-07

감독 만들기 3학기 - 쩐 만들기

봉준호 감독

롤모델은 박찬욱 감독이고, 써놓고보니 <올드보이>야? 그래도 장해. 아무리 엉성한 거라도 시나리오로 완결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야. 이제 감독의 길로 접어들기 위한 여러 단계들 가운데 뭐가 가장 너랑 잘 맞는지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거지. 매시간 영화를 생각하는 지옥으로 들어온 걸 축하해. 영화 촬영하면서 감독들이 수면제 먹고, 영화 망하면 머리칼 쥐어뜯는 건 생각도 못해봤겠지? <늑대와 춤을> 작가가 40살이 넘어서야 첫 시나리오를 세상에 냈다거나, <세븐>의 작가가 낮에는 타워레코드에서 일하고 밤에는 밤새 시나리오를 썼다는 건 별로 알고 싶지 않겠지? 할리우드에선 보통 15번째 시나리오가 입봉작이 된다는 얘기는 어때?

1.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 연출력은 당대 최곤데 시나리오가 꽝이라구? 어떤 제작자가 네 연출력을 알아보고 널 쓰겠니. 김기덕, 김지운, 김대우, 김현석, 윤제균 감독 같은 이들이 시나리오로 시작한 선배들이지. 제작자들의 눈길을 끄는 시나리오를 쓰는 건 언제나 중요한 일이야.

2. 단편 출품 네 상상력을 들여다보면 너무 눈이 부셔 눈이 멀 거라구? 그래 좋아. 3분짜리라도 좋으니 네 머릿속을 좀 보자구. 장준환, 봉준호, 송일곤, 노동석 감독 등이 단편부터 시작해서 영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지. 시나리오만 들입다 파지 말고 부실하더라도 단편영화를 한번 만들어보라구. 어떤 장면이 찍을 수 없는 건지, 뭐가 좋은 연결인지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글쓰기도 더 좋아질 거야.

3. 제작부 단편영화를 만들어봤다고, 시나리오 좀 써봤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고. 박찬욱, 임상수, 봉준호 등 모든 감독들이 선배 감독들 밑에서 수업을 쌓았지. 요즘은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않고도 입봉하는 사람이 있지만 큰판에서 놀아봐야 할 필요가 있어. 왜냐하면 말이지, 장편을 만들려면 그 많은 스탭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하거든. 인간성에 대한 통찰과 정치력과 판단력이 두루 요구된다는 거지.

4. 기타 그런데 영화감독이 되는 길은 정도가 없다구. 이준익 감독처럼 극장 선전부부터 시작해서 외화 수입 등 온갖 영화 관련 일을 잡다하게 하다가 뒤늦게 꽃을 피운 사람도 있고, 감옥생활을 하다가 40살이 넘어서야 영화학교를 마치고 50대 중반에 첫 영화를 만든 카네프스키 같은 사람도 있지. 엄청난 경험이든, 무지막지한 돈이든, 단편영화와 시나리오의 포트폴리오든 그런 물적·심리적 토대를 굳건히 다져야 영화가 나온다는 건 사실이야. 그 모든 토대와 조건을 ‘쩐’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결국 영화는 ‘돈’이 말하는 예술이니까. 아니 예술인 척하는 ‘돈놀이’인지도 모르지. 아무튼 ‘네 꿈이 가능할 수 있게 돈을 마련하라’.(리들리 스콧)

많은 지원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많은 영화제에 출품해보고, 돈 많고(또는 돈 많은 이를 알고) 지혜로운 투자자들에게 네 영화를 잘 설명해야(이걸 피칭이라고 한단다. 글발로 마음을 낚지 못하면 말발로라도 마음을 낚아야 한단다) 하는 거지. 그것도 안 된다면 그냥 악조건에서 계속 만들어야 해. 저예산의 상상력이라는 게 또 있잖니. 조명이 없으면 자동차 헤드라이트라도 쓰고, 카메라 살 돈이 없으면 빌리고, 조명기 빌릴 돈도 없으면 미디액트 같은 곳에 회원으로 등록해서 저가에 대여하고, 좋은 배우를 섭외하지 못하면 길거리 캐스팅이라도 하고, 그런 아이디어마저도 없다면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엘 마리아치> DVD 부록에서 들려준 ‘10분짜리 영화학교’ 같은 강의라도 메모해서 실전에 써먹으렴.

감독 만들기 4학기- 영화라는 우정의 학교

류승완 감독

혹시 왜 영화판에 그렇게 형제 감독들이 많은지 아는 사람? 타비아니, 코엔, 워쇼스키…. 이렇게 많은 형제가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는 다른 예술 장르에서 찾을 수가 없지. 영화와 비슷해 보이는 연극, TV 드라마에서도 이런 경우는 드물지. 비록 형제는 아니지만 감독-촬영감독, 아니면 감독-작가가 마치 부부처럼 매번 같은 작품에서 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야. 스필버그 하면 카민스키, 우디 앨런 하면 고든 윌리스, 임상수 하면 김우형처럼 감독과 촬영감독은 샴쌍둥이처럼 함께 다니잖아. 눈을 조금 더 들어보면 친구들끼리 만든 스웨덴의 영상집단 ‘트랙터’, 비디오대여점 점원 동료들과 함께 쌈짓돈을 털어서 영화를 배웠던 타란티노, 동네와 학교친구들로 배역을 모두 구성하며 영화 찍기를 배운 로버트 로드리게즈, 8살 때 부모님의 친구가 사준 카메라로 동네 꼬마들과 영화 찍기부터 배운 피터 잭슨, 배우인 동생을 기용해 데뷔작을 만든 류승완 감독 등이 영화는 우정의 학교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지.

영화는 혼자 하는 게 아니야. 감독이 되려는 이유가 스타가 되고 싶거나 권력을 휘두르고 싶거나 절대반지를 낀 제왕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서 아니니? 그런 감독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감독의 속성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일부 감독의 성공 결과일 뿐이야.

영화가 다른 예술과 유독 다른 점은 늘 친구들과 함께 공동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지. 쌓인 눈을 치우다 말고 스탭이 도망가버리거나, 집요한 감독이 너무 싫어서 조감독이 도망가버리거나 하면 말짱 헛일이지. 만약 친구들을 끌어 모아 영화를 한다고 쳐. 장비는 어디서 누가 빌릴 것이며, 제작비는 어떻게 조달할 것이며,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과 차는 어디서 구할 거지? 그걸 다 돈으로 해결하려면 부모님 사시는 집을 몰래 팔아야 할지도 몰라. 그렇다면 당장 친구들부터 잘 사귀어야겠지? 만약에 평소 성격이 더러웠다면 이 기회에 인격도 수양하고 남을 배려하는 법도 배우라고. 자기만 연출할 생각이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연출할 기회를 주면서 조명, 촬영, 사운드, 편집 등 영화 각 부문의 스탭 일을 하는 것도 꼭 필요해. 피터 잭슨과 쿠엔틴 타란티노가 누리는 명성만 부러워할 게 아니라 그들이 아주 어릴적부터 친구들과 영화로 대화하고 함께 만들어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거지. 소수만 입학이 허용되는 엘리트 코스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괴로워하지 말라구. 죽을 때까지 친구들과 함께 해야하는 일이라면 그 코스의 기간은 정말 너무 작은 부분일지도 몰라.

1.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자신만의 기금을 마련하기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하기보다는 아르바이트로 영화에만 쓸 수 있는 자신만의 금고를 만들면 좋겠지.

2. 아무리 허름하더라도 자기만의 시나리오를 축적하기 친구는 있는데 시나리오가 없다면 꽝이겠지? 자기 얘기들을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들려줘. 물론 그 얘기로 친구들을 모을 수 있으면 더 좋겠지.

3. 각종 단기 영화학교에 등록하기 취향과 열의가 비슷한 그러나 평소 만나기는 어려웠던 다양한 연령대의 영화친구들을 만날 기회야. 그러나 무조건 친구들을 만나기보다는 ‘쩐’과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나가야 더 좋겠지. 모두들 자기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고, 시간과 돈과 장비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4. 설득하기와 도와주기 영화학교에 가서 모두들 자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냐. 자기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스탭으로 들어가더라도 잘 해내야 돼. 네가 얼마나 훌륭하고 멋진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 네 아이디어와 열정이 친구의 영화를 더 빛나게 하는 것도 멋진 일이니까.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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