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셜 맥루한의 말대로 미디어는 메시지다. 우리 시대의 에스페란토, 만국공통어는 영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니며 한국어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다. 영화로 소통하는 방식 자체가 메시지이며 이 메시지는 누구나 만들고 보내고 받을 수 있는 평등과 자유를 담고 있다. 그러니 친구들이여, 영화가 천재의 언어라는 편견을 버리고 직접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 친구와 소통해보라.
감독 만들기 1학기 - 너만의 별을 찾아라, 롤모델 찾기
슛, 액션. 야아~, 뭐 해. 뭐 그렇게 떫은 표정 하고 있니. 영화감독 되려고 들어왔으면 인사방법도 달라야지. 그래 첫 학기야. 꿈은 부풀어 오르고 머릿속엔 아무것도 없지? 나도 마찬가지야. 같이 시작하는 기분으로 하자구. 먼저 감독이 되고 싶으면 자기가 따라하고 싶은, 벤치마킹할 롤모델이 있어야 할 것 같아. 각 감독들의 유형별 연구가 필요한 거지. “난 스필버그도 좋아하고요, 박찬욱도 좋아해요.” 이러지 마. 그럼 우리 힘들어져. 아무도 볼 수 없는 짜깁기 누더기 영화가 나오거나, 완성도 못하고 엎어지거나, 그러다가 부상후유증으로 데뷔도 못하고 은퇴하게 될 수 있어. 어, 무슨 그런 헛소리를 하느냐구. 이런 얘기야. 일단 자신의 조건부터 면밀히 잘 따져봐야 해. 아버지 어머니가 돈을 주체 못할 정도로 안겨준다면 미국 유학도 가고 스필버그도 흉내내고 박찬욱도 베끼고 네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현재 가진 건 열정뿐이요, 잃을 건 졸라 아무것도 없다, 이거 아냐, 언더스탠? 그림이 팍 오지? 고생길이 훤히 보이지. 하지만 벌써 절망 말라 이거지. 헤매는 자가 다 길을 잃은 건 아니라구. 헤매는 즐거움도 없이 인생을 거저 먹으려 들지 말자구. 다만 덜 헤매도 될 걸 굳이 더 헤매겠다는 건 미련해 보이잖아?
1. 유학파 곽경택 감독처럼 미국 유학 다녀오고 <친구>로 대박 터뜨린 감독이 주류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 지금 날리는 감독들 가운덴 유학파가 드물게 되버렸지. 그러니 주눅들지 말라고.
2. 영화 아카데미 지금 한국영화를 이끄는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지. 들어가기 힘든 곳이지만 또 여기 나왔다고 어서 옵쇼~ 하고 영화제작을 맡기지도 않아. 어차피 좋은 시나리오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승부를 보는 게 영화판이라고. 그게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말이야. 다만 좋은 영화와 안 좋은 영화가 있을 뿐이지. 소수의 엘리트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낙담하지 마시라.
3. 영화 동아리 서울대 알라셩 출신 박광수 장선우, 서강대 철학과 다니면서 사진 동아리에서 시작한 박찬욱, 외대 동아리 출신 이재용…. 음, 되게 많지? 영화 전공 안 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영화 이외의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는 게 더 중요하다구. 중요한 건 의지고, 의지가 길을 만드는 거지.
4. 기타 연극 하다 영화도 하게 된 장진, 소설가 출신 이창동, 시인이었던 유하, 트럭운전수로 시작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는 이 모든 걸 다 껴안는다는 얘기겠지. 영화가 다루지 않는 인생이 있을까. 그러니 산전수전 돌아간다고 해서 울고불고할 거 없어.
5. 진짜 기타 무술감독이었던 원신연,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영화판에 뛰어든 류승완,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주말마다 영화를 만드는 안슬기, 돈이 모자라면 취직해서 자금을 모아 영화를 찍는 신재인, 포르노극장 기도와 비디오대여점 점원을 하면서 영화를 찍은 쿠엔틴 타란티노…. 정말 진짜 물건들은 아주 이런 잡동사니에서 나온다구. 가장 고생도 많이 하고 열등감도 많이 느낄 수 있겠지만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야. 기말 숙제로 로버트 로드리게즈처럼 영화로 제출해봐. 어, 벌써 미친놈 취급받았다구? 축하해! 그 배짱이 네 성공의 근거가 될 거 같아.
감독 만들기 2학기 - 눈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써라
레디~ 고. 영화는 사실 시나리오가 반이야.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 나올 수 있어도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 안 나와. 네 안의 이야기, 네 마음속 깊이 잠복한 이야기, 네 스스로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시나리오야. 시나리오 학교를 다녀도 좋고, 시나리오를 구해 읽는 것도 좋고, 작법서를 읽는 것도 좋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됐든, 그러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쓰겠다는 각오로 ‘눈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완성하라는 거지.
물론 쉽지 않아. 어이구, 벌써 낑낑대는 거니. 자기 이야기 없는 감독의 수명이 얼마나 가겠니. 하고 싶은 얘기도 없고, 밑천도 없다고? 그래서 많은 뛰어난 감독들은 엄청난 독서가란다. 박찬욱 감독처럼 고전이든, 임상수 감독처럼 한국소설이든, 타란티노처럼 펄프픽션이든 닥치는 대로 읽어둬. 단 너만의 ‘보이는 이야기’로 만들어야지. 그리고 자기 스타일에 꼭 맞는 영화를 유심히 들여다봐. 그걸 거듭해서 외울 정도가 되면 좋지. 장면을 엮어가는 방법은 DVD나 어둠의 경로로 구한 파일(이젠 제발 그런 짓 좀 하지 마. 남들이 네 영화를 거저 보면 좋겠니?)의 신을 캡처해서 면밀히 뜯어보는 거지. 두 사람 대화하는 걸 찍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 감독마다 얼마나 가지각색인지 놀랐지?
1. 구상한다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거나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녀봐.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재미있다, 마음에 끌린다 싶은 아이디어를 차곡차곡 쌓아서 그림 이야기를 붙여나가봐.
2. 끝을 생각한다 어 벌써 스토리보드도 그렸네. 그런데 그런 에피소드들만 줄창 묶어놓으면 영화가 되니? 그건 그림첩이지. 어떻게든 이야기가 처음과 끝을 가진 하나의 그럴싸한 구조가 되게 쥐어짜라구. 안 그런 예술영화들 많다구? 벌써 거장 흉내내면 영화사에서 고아가 되버린단다. 별똥별처럼 그냥 사라지지. 어디서? 당장 네 마음에서 말이야. 네가 감동받지 않는 이야기는 남들도 시큰둥하단다.
3. 씨 뿌리고 잊어라 만날 안달복달하며 책상에만 붙어 있는다고 다 되는 건 아냐. 다 쓰고 나서 서랍에 잠궈두고 네 마음 안에서 숙성하게 내버려둬. 다만 네가 만든 등장인물(네 주인공들은 다 네 줄기세포로 만든 복제인간이니 좀 친해둘 필요가 있어)이니 애인처럼 가족처럼 지내야 한다구. 네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겠니.
4. 다른 아이들을 보고 네 아이를 다시 봐라 그리고 다른 아이들, 즉 다른 감독의 주인공들을 비롯해 장면 전환, 편집, 촬영, 이야기 전개, 갈등, 화해 등 모든 걸 주의깊게 보라구. 아마 네 아이들과 비슷한 고민과 꿈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 아이들이 곤경을 어떻게 돌파하는지 잘 보라구. 그렇다고 베끼진 말고 완전히 네 식으로 바꿔.
5. 놀면 뭐 하니, 아이들 이름이라도 지으라구 저런, 저런. 아이들은 서랍에 가둬놓고 애들 이름도 안 지었니? 좋은 주인공은 네 이름 쓰고 나쁜 악당 이름은 너 괴롭히는 짝 이름 썼다구? 상상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세금 더 나오는 것도 아닌데 머리 좀 쓰자. 버릇, 습관, 말투, 옷차림, 식성, 이 모든 걸 알고 거기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렴.
6. 조바심과 게으름 모든 죄의 근원은 조바심과 게으름이라고 카프카 형이 얘기하셨지. 이제 그만두겠다고? 여기가 가장 넘기 힘든 관문이야. 여기서 쓰러져 죽은 사람들의 묘지 이름이 ‘핑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