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이 말하는 `나를 움직인 미야자키 하야오`
움직이는 그림으로 살아난 그의 판타지가 얼마나 많은 꿈을 피워냈던가. 코난과 토토로의 아버지, 인간과 자연의 숨결이 교감하는 애니메이션의 소우주를 창조해온 조물주 미야자키 하야오가 한국을 방문했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래소년 코난> 같은 TV시리즈부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등의 장편까지, 인간과 문명, 자연의 충돌과 공존을 담은 애니메이션 상상화를 펼쳐온 일본 아니메의 거장이다. 그간 공들여온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지난 7월21일 일본에서 개봉돼 흥행의 순풍을 타면서 한숨을 돌린 그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왔다. 마침 국내에 개봉하는 <이웃집 토토로>로 미야자키의 세계를 스크린에서 만나려는 찰나, 때맞춰 온 이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그의 영토에서 새로운 꿈을 만났다는 박재동 감독의 환영사와 함께.편집자
미야자키 하야오.한없는 존경심과 애정과 사랑과… 그리고 질투심을 일으키는 이름.
15년 전, 1986년. 나는 ‘움직이는 그림’,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갖고 있긴 했지만 그 길을 가겠다는 마음이 일지는 않았다. 선견지명이 있던 나의 벗 강요배 화백이 우리 같이 애니메이션을 하자고 했을 때도 내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TV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하면 막연히 언젠가 저걸 내가 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도 선뜻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 모든 것을 바쳐 할 만하다는 생각은 나지 않은 것은 그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년 뒤, 성 시스티나 천장의 벽화만큼 큰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었던 나는 뜻하지 않게 만화를 그리게 되었다. <한겨레>에서 시사만화를 그리면서 나는 회화가 갖고 있던 소통과 유통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장을 얻게 되었다. 만화, 그것은 신천지였다. 그곳은 화랑과 평론가,미술잡지사와 교수들의 굴레를 벗어나 대중과 일대일로 대면해서 승부하는, 작두 위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어렵기도 하지만 치열하게 생동하는 현장이었다. 만화는 나의 예술에서 구원이었다. 만화의 묘미와 힘을 점차 더하여 느껴가고 있던 무렵, 하루는 도쿄 통신원이던 동료가 구해준 일본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이웃의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름도 모르는 감독의 작품들이었다. 정말 나는 놀랐다. 이렇게 멋진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었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 어떻게!”
나는 이 감독의 작품들을 다 좋아했다.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한 작품은 <이웃의 토토로>. 세상에 이렇게 예쁜 작품이 있을 수 있다니! 뜻밖에 만난 도깨비 토토로, 사츠키의 고집스러운 동생 메이의 실종, 다리가 짧아 옆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메이를 찾아보는 이웃 남자아이, 사츠키가 동생을 찾아가는 중 노을 진 언덕에서 때때때때 울며 날아가는 방아깨비…. 좋은 작품이란 ‘아, 저걸 내가 했어야 되는 건데…’ 하는 탄식을 주는 법이다. 그런 탄식 속에서 계속 봐나가다 만난 것이 고양이 버스! 아! 그 만남은 탄식을 넘어서 버렸다. 그러니까 신음이라고 해야 될까? 고양이의 눈에 불이 켜진다. 머리 위에 행선지가 나타난다. 옆구리에서 문이 열린다. 사츠키와 메이가 탄다. 버스는 열개나 되는 발로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달린다. 논 위를 지나 전봇대 위를 지나 바람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 다른 것들은 할 수 있다 치자, 어떻게 이런 고양이 버스를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앙증맞은 버스를 말이다!
이어서 본 나우시카의 대왕충, 라퓨타에서의 벌비행기…. 그 모두가 부러움과 좌절감과 묘한 자신감과 희망과 설렘과 슬픔과 환희를 교차시켜주었다. 그런 다음 내 이마에는 지울 수 없는 이름이 새겨졌다. 미.야.자.키.하.야.오.
이제야 밭을 갈기 시작한다
그런 뒤 애니메이션에 대해 망설이던 나는 혼잣말을 했다. 그렇다! 애니메이션은 내 예술을 피워낼 수 있는 땅이 될 수 있다! 또 혼자 속삭였다. 애니메이션은 미래의 예술을 이끌어갈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남몰래 그 땅을 계약해 두었다. 이후 다시 만난 사람은 다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의 동료인 그가 감독한 영화는 <반딧불의 묘>와 <추억은 방울방울>. 둘 다 내가 몹시 좋아하는 영화다. 리얼리즘. 그래서 나와 피가 통한다. 난 다카하타와 더 많이 통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역시 미야자키가 부럽다. 그는 상상하고 창조하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그림쟁이여서 그럴 것이다. 그는 세계를 주무르고 만든다. 그것이 위대한 점이다. 나 역시 창조하고 싶다. 미야자키와 다카하타, 두 길. 또다른 길은 없을까?
시사만화가를 그만두고까지 내가 예약해 놓은 그 땅을 기어이 사서는 아직 돌투성이인 그곳 맨땅을 갈아 뭔가 싹을 트워보려 한 지 벌써 6년째. 땅을 갈면서 배우고 배우는 건,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였다. 역시 하나하나 기초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 의욕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 이야기부터 제대로 짜나가야 된다는 것… 스토리, 자본, 인력, 시스템, 인간 관계… 미야자키는 동료 애니메이터가 빚을 져 고민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해결해 주고 일에 몰두하게 해준다고 하지 않은가? 난 뭔가? 동료들 고생이나 시키고 있지 않은가. 미야자키는 <원령공주>를 만들면서 손이 아파 더 못 그리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거야말로 화가의 명예가 아닌가. 난 뭔가? 아직 일에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했지 않은가. <…토토로>를 만들며 일본 아이들에게 지금은 잃어버리고 있는 지난 시대의 따스함을 전해주겠다던,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아이들을 도깨비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하는 철학, 개발된 부유한 일본보다는 개발 안 된 가난한 일본을 선택하겠다는 철학(나하고 조금은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이 미야자키였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 사물에 대한 짙은 호기심!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 그림과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강력한 사랑. 동료애와 책임감. 철저한 장인정신. 그 모든 것이 미야자키였을 것이다. 그의 상상력도 그런 데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난 미야자키의 작품 중 <원령공주>는 다른 작품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모르겠다. <원령공주>를 다른 작품보다 먼저 봤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한데 왠지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는 느낌이다. 약간의 오만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한 셈인데, 그동안 쌓아올린 크레디트로 이제 그럴 때도 됐다고 봐야 할 게다. 하기야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점에서는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주고 있다. 한 생명체로서의 작품이라는 관점과 그래서 얼마나 정이 가는 작품이냐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나로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길을 간 지 얼마 안 되는 내 시야에서 미야자키는 저 멀리 버티고 서 있는 설산만큼이나 높고 아름답다. 나는 이제야 밭을 가는데 그의 땅은 이미 거목들이 자라 새들이 날아와 우짖고 있다.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얼마나 갈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그토록 사랑하는가? 나의 기쁨은 얼마만하고 나의 슬픔은 얼마만하고 나의 분노는 얼마만한가? 내 사랑은 얼마나 깊은가? 나 속에 얼마나 생동하는 인물들이 살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에게나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가? 내 상상력은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나는 어떤 나만의 그림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내 작품을 내가 만날 날은 한발씩 오고 있는데 나는 과연 어떤 나의 작품과 만나게 될까? 기대도 되고 두렵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그중에 미야자키도 끼어 있으면 좋으련만. 수없이 많은 그림들이 지나가고 자신감과 좌절감이 교차하면서 지나간다. 그래도 지금 배운 것은 한발한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다듬어지지 않은 꿈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나를 이끌어온, 내가 잊어야 할
나에게 애니메이션의 길을 걷게 한 사람 디즈니와 미야자키 하야오. 언제 나는 그들의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 그들을 진정 잊을 수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
한없는 존경심과 경탄과 사랑과… 그리고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름. 나는 그 경애하는 마음을 보듬으며 또한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질투심을 어루만진다. 그것은 나의 소중한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밤이 깊었다.
나는 그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생각하면서 아직 여린 나의 그림들을 마음속에서 보고 있다.
박재동/ 애니메이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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