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흘리개 아이들이 부천의 붉은 카펫을 밟았다. 이 사건은 50년쯤 뒤 국사책에 두줄 정도로 나올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라고 말하면 여기저기서 돌이 날아오겠지만, 우리 꼬맹이들에게는 너무도 흥분된 일이었다. 난 꼭 <미션 임파서블>에서 톰 크루즈가 입고 나온 듯한 턱시도를 입고 붉은 양탄자를 밟으려 했건만 감독님께서 참으라고 하셨다.(참길 잘했다. 턱시도 입은 사람은 내 눈에도 안 보였다.) 어쨌든 대망의 부천국제영화제 개막신은 화려하고도 예술의 향기가 여기저기서 흩날리는 듯했다. 개막식 중 영호인들을 호명해서 무대로 나가 인사하는 순서였는데, 드럼 치는 상혁이가 자꾸 떨린다고 했다. 난 얼어서 말도 못했다. 옆에 부천 페스티벌 레이디인 장진영씨가 서 있었다. 검은 드레스르 입은 그냐와 빨간 양탄자는 정말 잘 어울렸다. 판타스틱했다. 개막작인 <레퀴엠>은 아주 강렬했고, 암울했다. 그리고 제니퍼 코넬리의 나이는 몇살일까 궁금했다. 언제까지나 늙지 않는 소녀, 그것이 배우인가보다. 아참! 우리도 배우였지. 7월 16일 우리 크라잉 너트는 심야영화를 보러 다시 부천을 찾았다. 일본에서 같이 공연했던 기타울프가 주연한 영화 <와일도 제로>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와일드 제로>와 <시리즈7>을 보고 `이것이 PiFan만이 보여줄 수 잇는 영화구나!`라고 생각했다. 꿈과 낭만의 성인전용 디즈니랜드 같은 곳, 그곳은 PiFan이었다. 아침까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니, 예술의 바람이 감동으로 젖은 우리의 뇌를 씻어 주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몇 시간 뒤면 크라잉 너트 주연의 <이소룡을 찾아랏!>이 상영되지 않는가? 잠이 선뜻 오질 않았다. 영화배우 크라잉 너트가 스크린에서 관객과 만나는 것은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소룡을 찾아랏!>에서는 크라잉 너트의 사뭇 진지한 모습도 나오기 때문에, 관객이 적응이 안 될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암튼 영화는 가득 메운 관객의 박수를 받으며 끝났고, 그 감동이란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촬영기간 동안 고생하던 스탭들과 모든 영화인들 생각에 갑자기 1분 정도 숙연해졌다. 그리고 크라잉 너트는 스크린을 뛰쳐나와 아름다운 부천의 밤을 노래했고, 영화처럼 사는 모두를 노래했다. 그리고 밤이 깊었다. 한여름밤 축제의 흐르는 술은 달콤했고 모두는 기분좋게 취했다. 오늘 부천의 밤은 바람에 별이 스친다.
P.S. 만약 언젠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크라잉 너트가 남우주연상을 받게 된다면 소감을 이렇게 말하겠다. “주님 감사합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신사숙녀 여러분! 먼저 크라잉 너트에게 이렇게 큰 상을 줏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오래 전 크라잉 너트가 철없던 시절 <이소룡을 찾아랏!>이란 영화로 부천의 붉은 카펫을 밟았던 기억이 나는데, <이소룡을 찾아랏!>의 강론 감독님 그리고 모든 스탭, 영화의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과 함께 오늘의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 참... 그리고... 어머니...”한경록/ 크라잉 너트 베이스 ·영화배우
▶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결산
▶ 영화배우 크라잉 너트의 부천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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