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쩌다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연기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하고 싶어했는데 아빠가 ‘그거 해선 밥 못 먹고 산다’고 말렸다. 엄마가 옆에서 응원해주지 않았다면 일을 시작 못했을 거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도 빼놓을 수 없다. 홍익대 회화과에 합격한 다음에 선생님과 밥먹을 자리가 있었는데 방송사 코디였던 따님을 소개시켜주더라. 그걸 계기로 아침드라마 <사랑은 이런거야>에 나오게 됐다. 영화는 평소 알고 지내던 매니저가 오디션 소식을 알려줘서 응한 건데. 피말리는 3주 동안의 토너먼트를 치른 뒤에야 뽑혔다.
-02 일을 시작하고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던 점은.
=간식 너무 잘 챙겨주는 거. 방송사에선 있다 해도 먹을 시간이 없었다. 이번엔 간식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더라. 싸이더스만 그런가. 촬영장에 먹을 게 많아서 가끔 훔쳐서 집에 가져간다. 스탭 오빠 언니들이 잘해주는 것도 좋다. 그렇게 대사하면 니 목소리 안 좋게 들린다며 조언도 해주고. 종일 대기할 때 장난 상대도 돼준다.
-03 일하면서 욕먹었던 일이나 칭찬받았던 일은.
=(이)청아를 때리는 장면 촬영 때였는데, 소리가 안 났다면서 김태균 감독님이 ‘니네들 장난하냐’고 하셨다. 난 힘껏 때렸는데 소리가 안 난 거다. 맞은 사람은 맞은 사람대로 아프고. 그때 알았다. 맞는 연기보다 때리는 연기가 더 어렵다는 걸. 우는 장면에서 잘 운다고 다들 칭찬해준 적이 있다. 근데 그 다음날은 감정을 놓쳐서 못 울었다. 그래서 욕먹었다. 아무리 슬픈 상황을 떠올리려고 해도 세상이 청명해지면서 말똥말똥해지는데 죽겠더라. 테이크 여러 번 갈 때마다 연기가 는다고들 하는데 진짜 느는 건지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인지 헷갈린다.
-04 친구들이 내가 하는 일을 부러워할 때.
=돈을 굉장히 많이 버는 줄 안다. 예쁜 옷 마음대로 입을 수 있으니 좋겠다고 하고. 지금은 실체가 드러나서 그런 말 안 한다.
-05 친구들이나 가족이 쯔쯔 혀를 찰 때.
=다들 후원해주는 편이다. 친구들이 대출도 해주고(기자는 처음에 은행대출인 줄 알았다). 내 연기 모니터해주기도 하고. 반대하셨던 아버지는 그만큼 더 오버하시면서 도와주신다.
-06 그때 엎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못한다고 엎을 수 있나. 도망가거나 숨으면 몰라도. 순간적으로 열받은 적이 있긴 하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연기를 할 때였는데 주인공들이 만나기 직전에 걸리는 장면이었다. 내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이라 감독님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하신 장면이다. 근데 주인공들이 만나는 타이밍이 안 맞아서, 앵글이 안 좋아서 테이크 수가 생각보다 늘어났다. 그러는 동안 난 계단에서 계속 굴렀다. 허벅지에 멍은 들지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오지. 게다가 그 장면은 두번이나 재촬영했다. 울컥하더라.
-07 힘들 때 위로하는 방법은.
=먹거나 운동한다. 당분 보충하고 헬스 3시간씩 하고. 땀 흘리고 나면 풀리는 것 같다. 혼자서 그러고 나면 좀 풀린다.
-08 혹시 벌써 직업병이.
=드라마 볼 때 이제는 즐기면서 못 본다. 이건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서.
-09 로또에 당첨돼도 계속 이 일을 할 생각인가.
=숫자 고르는 게 귀찮아서 사본 적이 없다. 혹시나 된다면 부동산에 투자해야지. 그 돈으로 비행기를 살 수도 있나. 그거 타고 여행 다니면 좋을 텐데. 어쨌든 이 일은 일대로 할 것 같다.
-10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이상은.
=난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는 지금이 너무 무섭다. 앞으로 이거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힘들어도 촬영장이 더 좋다. 근성있는 배우가 돼서 오래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