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렉터스 컷으로 재개봉된 <엑소시스트>, 20세기 공포의 고전이 21세기에도 유효한 이유
윌리엄 프리드킨은 ‘가장 무서운 영화’로 자신이 만든 <엑소시스트>를 꼽는다. 하필 자기가 만든 영화라 쑥스럽기는하겠지만, 그의 판단에 동의할 사람은 대단히 많다. 2000년 <피플>과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선정한 ‘가장 무서운
영화’ 1위로 모두 <엑소시스트>가 꼽혔다. 2000년에 재개봉된 <엑소시스트>는 27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난도질영화와
스플래터무비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도 먹혀들었고, 미국에서만 3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특수효과의 발달을 가장 유용하게 써먹는 장르의 하나인
공포영화의 닳고 닳은 관객이, <엑소시스트>의 고색창연한 공포를 여전히 ‘끔찍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사실이다. 악령에
사로잡힌 소녀. 갖가지 끔찍한 사건들에 익숙한 21세기의 관객이 이젠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에도 여전히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장 앞 구급차,이벤트 무비의 시초
1973년 12월26일 개봉된 <엑소시스트>는 총 1억6천만달러의 엄청난 수익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획기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31년 <프랑켄슈타인>의 개봉 이후 최고의 반응이었다. <엑소시스트>를 본 관객은 기절하거나 구토를
일으키거나 아주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 영화가 끝날 때마다 극장관리인들은 토사물을 치우느라 골머리를 썩었다. 버클리의 한 남자 관객은 악마를
쫓겠다며 스크린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기도 했고, <토론토 메디컬 포스트>에 따르면 4명의 여성이 <엑소시스트>를 보고
난 뒤의 후유증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일종의 홍보작전이기는 했지만 극장 앞에는 늘 구급차가 대기했다. <엑소시스트>는 공포영화만이
아니라 평범한 영화로서도 넘보기 힘든 흥행기록을 세웠지만 결코 ‘대중적’인 영화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일설에 따르면 폴린 카엘 같은 평론가도
<엑소시스트>를 보면서 연신 ‘Jesus’를 읊조리고 구토했다고 한다. 물론 <엑소시스트>에는 수많은 보통 관객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엑소시스트>를 둘러싼 ‘현상’ 혹은 ‘이벤트’에 매혹된 것이다.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보는 다른 관객의 반응과 그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들에 동참하려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엑소시스트>야말로 ‘이벤트 무비’의 시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엑소시스트>의 파문은 단순히 영화를 보고 놀라거나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19살의소년 레이너 헤르트람프트가 <엑소시스트>를 본 뒤 라이플로 자살했다. 영국에서는 간질환자였던 16살의 존 파워가 자살하기 전에 <엑소시스트>를
봤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됐다. 영화의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자살로 이끌었다는 말이 나왔다. <엑소시스트>가 상영되는 영국의
극장 앞에서는 “당신이 이 영화를 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은 이 영화가 악마의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피켓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74년에는 9살 소녀를 살해한 10대 소년 니콜라스 벨이 법정에서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이건 내가 아니다. 내 안의 누군가가
저지른 짓이다. <엑소시스트>를 본 뒤 내 안에 그것이 들어왔다. 뭔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 <엑소시스트>에 대한 종교단체의
반응은 복잡했다. 대부분의 종파에서는 <엑소시스트>가 긍정적인 내용과 결말을 담고 있다며 문제삼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메린
신부가 내쉬는 숨결에 악마의 형상이 보인다고 주장하며 ‘악마의 영화’라고 심각하게 비난했다.
실화에 기초한, 실화가 돼버린
상상을 초월한 고감도의 반응을 놓고, 윌리엄 프리드킨이나 원작자인 윌리엄 피터 블래티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이건 단지 심령 스릴러일 뿐이다”라는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영화사에서는 일관되게 <엑소시스트>는 ‘실제 사건’에 기초한 것이고, 촬영 내내 ‘어둠의 힘’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홍보했다. <엑소시스트>가 실제 사건에 기초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1949년 8월 어느 날 <워싱턴 포스트>의
헤드라인은 ‘신부, 악마에게 사로잡힌 소년을 해방시키다’였다. 메릴랜드지역에 살고 있는 14살의 소년이 악마에게 사로잡혔고, 신부가 그 아이를
구해냈다는 내용이다. 소년의 방에서는 물건들이 마구 떨리거나 움직이는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일어났고, <엑소시스트>에서 보여준 리건의
행동을 반복했다.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반종교적이고 외설적인 말들을 내뱉고, 목소리와 얼굴 모습이 변하고, 피부에는 이상한 낙인 같은 것들이
나타난 것이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3개월간 수많은 목격자들이 그 광경을 지켜봤다.
윌리엄 피터 블래티는 조지타운대학 시절부터 이 사건에 대해 들었고,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윌리엄 피터 블래티는 만화책의
스토리와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리고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1949년의 엑소시즘을 취재하려 했다. 블래티는 당시의
엑소시즘 과정을 적은 신부의 일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회쪽에서 일기의 공개를 거부하자, 블래티는 픽션을 구상했다. 14살의 소년을
12살의 소녀로 바꾸었지만, 한 육체에 동거하는 두개의 인격이나 워싱턴의 한 병원에서 치료받았다는 것은 그대로였다. 소설을 쓰던 도중 블래티는
일기를 누군가에게 구해 읽었고 많은 부분을 그 일기에서 참조했다고 한다. 69년부터 쓰기 시작한 <엑소시스트>는 71년에 출간됐다.
윌리엄 피터 블래티는 <엑소시스트>를 단지 ‘공포소설’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다. 49년의 사건을 접했을
때 블래티는, ‘불행하게도 기적이 부족한 세상’에서 ‘초월성의 구체적 증거’라고 생각했다. 블래티는 악마의 존재를 믿는다. 하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악마도, 신도 존재한다. 그것은 우리 삶의 영속성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엑소시스트>가 실제로 가능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한다.
<엑소시스트>가 ‘악마의 영화’라는 소문은 촬영 때부터 시작됐다. 엘렌 버스틴은 “악의 힘이 간섭하고 있음을 늘 느낄 수 있었다”고말했다. 가능성은 있다. 버크 데닝스 역의 잭 맥고런은 촬영이 끝난 뒤 바로 사망했다. 린다 블레어의 할아버지와 막스 폰 시도의 형제가 죽었고
현장의 스탭 하나와 경비원 한명도 변을 당했다. 제이슨 밀러의 아들은 오토바이에 치일 뻔했고, 블래티의 비서 노니는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으며
그녀의 룸메이트는 미쳐서 정신병원으로 갔다. 세트장에는 불도 났다. 프리드킨과 블래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이한 현상’을 토로했다. 프리드킨은
“(현상된 필름을 보자)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장면과 이미지들이 자꾸 나타난다. 믿을 수 없게도 소녀의 얼굴이 이중으로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촬영 일정이 자꾸 늦어지자 윌리엄 프리드킨이 고의로 퍼트린 거짓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게다가 윌리엄 프리드킨은 영화의 홍보를
위해 여러 가지를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리건이 공중에 떠오르는 장면이 자석을 이용한 현상이라고 떠벌리고(실제로는 피아노줄을 이용),
그녀의 얼굴이 360도 돌아가는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절대로 밝히지 않았다. 리건의 안에 들어 있는 악마의 목소리를 라디오 배우인 메르세데스
매캠브리지가 연기한 것임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윌리엄 프리드킨은 <엑소시스트>의 효과적인 홍보를 위해 갖가지 술수를 부린 것이다.
심령드라마, 매혹적이고 소름끼치는
하지만 이것들은 단지 전제일 뿐이다. 아무리 허황된 정보를 듣고 갔더라도, 영화 자체가 맥이 빠지면 아무 의미가 없다. <엑소시스트>는수많은 소문과 과장을 뒷받침할 만한 힘이 있었다. 윌리엄 프리드킨은 가톨릭 교도인 블래티와 달리 불가지론자인 유대인이었다. <프렌치 커넥션>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아 절정에 올라 있었던 프리드킨은 <엑소시스트>를 좀더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처음에 그는 <엑소시스트>의
‘완벽한 이야기’에 끌렸다. 그가 보기에 소설 <엑소시스트>는 “캐릭터, 박진감, 충격, 반전 등이 거의 완벽했다”. <엑소시스트>의
감독을 맡게 된 프리드킨은 블래티의 시나리오 초고를 “원작에 충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시켰다. 그 시나리오는 프리드킨이 합류하기 전 프로듀서인
폴 모나시와 함께 쓴 시나리오였다. 폴 모나시는 프롤로그 부분의 아라크가 나오는 장면을 삭제하고, 배경을 과거 마녀사냥이 벌어졌던 메사추세츠주의
살렘으로 옮기기를 원했다. 고풍스런 ‘마법’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악령과 소녀의 이야기로 <엑소시스트>를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프리드킨은 아라크의 프롤로그과 조지타운의 풍경을 살리는 등 원작의 분위기와 대사를 함축적으로 시나리오에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프리드킨은 <엑소시스트>의
최적의 장소는 영국 런던의 동부 느낌이 나는 조지타운이라고 생각했다. 런던의 전설적인 살인마 잭 더 리퍼가 당장이라도 나타날 듯한 화이트채플
거리가 바로, 악령이 나타나는 ‘실제’의 장소인 것이다. 프리드킨은 <엑소시스트>가 비현실적인 다른 공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적인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되기를 원했다. <프렌치 커넥션>의 촬영감독 오언 로이즈먼에게도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이 나는 화면을 요구했다.
보통의 공포영화처럼 보이지 않기를, 더 자연스럽게 보이기를 원했다. 클로즈업도 제한하고 특수효과나 카메라의 트릭도 배제했다. 영화사에서 크리스
역으로 제안한 제인 폰다, 오드리 헵번, 앤 밴크로프트 등이 아니라 흥행과는 상관없는 엘렌 버스틴을 고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특수효과나 스타
파워가 아니라 관객의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공포심이 일어나도록 의도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시한 것은 음향효과였다. 악마의 들끓는 소리에는 매캠브리지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개들이 싸우는 소리, 도살장에서 돼지가 울부짖는 소리 등이 뒤섞여 있다. 순간적으로 악마의 형상이나 괴기한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의 무의식에 작용하는 ‘서브리미널 효과’를 노린 것도 프리드킨의 전략이었다. 이런 모든 시도가 결합되어, <엑소시스트>는 ‘가장
무서운 영화’로 탄생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악마의 존재 역시 인정해야 한다. 빛과 어둠은 어느 하나만 성립할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기독교 신앙에 깊이 젖어 있고, 그들의 무의식까지 지배하는 미국인을 비롯한 서구인들은 대부분 신이나 악마의 존재를 긍정한다. 그렇다면 <엑소시스트>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간 악마의 이야기는 이미 성경 속에서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엑소시스트>가 충격요법으로
관객을 혼란시킨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엑소시스트>에 경악한 것일까. <사이트 앤 사운드>는 <엑소시스트>가
‘그 공포감이 아니라, 심령학적 드라마로 기억’된다고 말한다. ‘신성함과 타락, 진보와 퇴행, 감추어짐과 드러남’이 공존하는 심령드라마로 기능하며
미국인들을 ‘매혹시키고, 소름끼치게’ 했다는 것이다. 73년이라는 시기는 모든 열정이 사라진 자리, 폭풍이 지나간 허무의 시기였다. 살인마
맨슨과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라는 광풍이 미국인들의 여린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갔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선함을, 세상의 선함을 더이상
신뢰할 수가 없었다. 또한 1972년 교황 바오로의 강연 중에는 ‘악마는 개인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한다’는 표현이 있었다. 교황이
공개적으로 악마의 힘을 언급한 것이다. 자신들의 선함을 믿을 수 없었던 73년의 사람들은, 혹시 우리가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한 것은 아닐까.
공포는 죽지 않는다
독실한 가톨릭 신도 윌리엄 피터 블래티는 “당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엑소시스트>는 믿음과 영성, 초월성의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한다.세상에는 선과 악이 있고, 그 결과는 신의 존재”라고 말한다. 예수회의 신부인 윌리엄 오말리도 “이건 <악의 씨>의 반응과는 다르다.
단지 무서운 것을 다룬 게 아니라, 선과 악의 싸움을 그린 것”이라고 덧붙인다. <엑소시스트>는 단지 현현하는 악의 모습을 그린
것만이 아니라, ‘신의 신비함을 그린다’는 것이다. 두 신부가 한 아이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과정은, 곧 예수의 가르침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엑소시스트>는 ‘기독교적 신앙’ 위에 세워진 영화다. 73년 당시 “<엑소시스트>를 본 많은 사람들은 다음날 교회로
갔다고 한다. 한 신부는 아침이 되자마자 고해소로 달려갔다”고 블래티는 전한다. <엑소시스트>의 공포는 악마가 나를 해친다는 투의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다. 악마는 언제나 우리의 곁에 존재하고, 언제든 우리를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엑소시스트>의 영상이 던져주는 공포는 지금도 여전하지는 않다. <엑소시스트>가 말하는 주제는 갖은
방법으로 변주됐고 구체적인 악의 증거 또한 목격해왔다. 다만 <엑소시스트>는 영화사의 고전으로서 그리고 리건의 몸 안에 들어갔던
악령이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의 속에 들어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걸작’으로 존재한다. 인간의 조건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절망감과 두려움 역시
여전하다. 신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메린 신부가 말하듯 그것이 악마의 사명이라면 여전히 악마는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비록 <엑소시스트>에서는
패배했다 하더라도.
글 김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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