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와 지아장커. 실제로 마주친 것은 부산의 영화제에서 한번뿐이라지만, 이들의 영화는 참 여러 곳에서 만난다. 음악영화 아닌 음악영화,
음악을 거울삼아 비루한 삶을 비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플랫폼>이 닮았고, 스타 대신 보통 사람의 얼굴을 찾고
소외된 인간군상의 일상을 담아내는 비주류 감성, 그리고 좀체 쉽게 움직이지 않으며 긴 호흡으로 뚝심있게 파고드는 리얼리즘의 시선이 서로
닮아 있다. 거슬러올라가면 96년 <세친구>와 97년의 <소무>로 희망없는 젊은이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데뷔할 때부터
두 감독은, 중국과 한국에서 어쩌면 닮은 영화의 꿈을 키워온 게 아닐까. 영화제 폐막 전날, 빠듯한 일정 속에 밤을 거의 새다시피했다는
두 사람은 겨우 시간을 맞춰 만났다. 이 대담을 위해 지아장커 감독은 전날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영화제 비디오자료실에서 챙겨
봤다. 임순례 감독은 <플랫폼>을 어떻게든 보려고 애쓰다가 끝내 보지 못해 아쉬워했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가 혹 끊어질까 하는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지아장커 (이하 지아) 영화에 대해 논한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지난해에는 전주에 폐막식 전날 겨우 왔다가 <플랫폼> 촬영이 끝나자마자 기차 타고, 비행기 타고 왔던 기억이 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언제 촬영했나.
임순례 (이하 임)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정도 찍었다.
지아 왜 악단을 찍을 생각을 했나.
임 친구가 지방 도시에서 고등학교 때 그룹사운드를 했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아 맨 마지막 부분에 여자가 무대에 나와 노래를 부를 때, 그 음악에 아주 감동받았다. 가사는 못 알아들어도 음악과
노랫소리를 들을 때 애처롭고 슬픈 느낌이 좋았다. 당신의 영화에도 몇몇 한국영화에서 느꼈던 정서, 애처롭고 슬픈 분위기가 깃들어 있다.
물기가 스며든 듯한, 바다 같은 느낌이 있다. 그에 비하면 <플랫폼>은 아주 건조한 느낌이다. 그게 바로 내 고향의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임 엔딩의 노래(<사랑밖엔 난 몰라>) 같은 건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한 노래랄까. 우리나라에서는 트로트라고 부르고, 일본에도 비슷한 음악으로
엔카가 있다. 그런 고유한 게 전달됐다니….
지아 그 여자의 노랫소리는 평면적이고 단순한 게 아니라 그 나름대로 역사를 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악단을 통해서
한국 사람, 한 개인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단지 한국 사람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고, 그래서 어떤 보편적 정서를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중국에서 온 시에페이 감독을 만났는데, <와이키키…>가 어땠냐고 물었더니 너무 좋았다고 했다. 여성감독이라는
걸 먼저 듣고 봐서 그렇지,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었다면 아마 몰랐을 거다. 영화 자체의 잠재력이라든가 파워를 봤을 때, 여성감독이다 남자감독이다
하는 한계를 초월한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신의 첫 영화 <세친구>도 보고 싶어졌다.
임 내 영화에는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감성들이 잘 안 드러나기
때문에, 여성영화제에서 내 영화를 틀어주질 않는다. (웃음)
지아 내가 볼 때는 아주 페미니즘적인 영화인 것 같은데.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의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가라오케에서 나신으로 노래하는 장면처럼 인물을 가장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넣고, 동시에 가장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절망적이지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런 대사없이 노래 한곡으로 끝나는데, 더이상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여기서 딱 끝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거야’ 하는 느낌이었다.
임 한국적인 노래가 너무 많이 나와서 외국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아 그런 건 신경쓰지 마시라. (일동 웃음) 나도 느낄 수 있었고, 다른 관객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있는 그대로, 완곡하게
임 아쉽게도 <소무>밖에 못 봤지만, 당신이아까 말했던 건조한 느낌은 이해가 된다. 듣기로는 다음 영화를 찍으려고 준비한다던데, 그런 건조함도 하나의 스타일이지만 바꿔보고 싶지 않나.
난 내 영화가 지금과 다른 스타일, 예를 들어 에밀 쿠스투리차 영화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해봤으면 하지만, 나로서는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당신도 다른 것을 원하는데 잘 안 되는 건가. 아니면 다음 작품에서 뭔가 다른 걸 해볼 건가.
지아 항상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나 혼자 생각하는 게, 이번에는 한번
스타일을 바꿔봐야지, 하는 것이다. (웃음) 하지만 그래봐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삶이라든가 본질 같은 것은 언제나 바뀌지 않는
것 같다. 그것도 좋다. 쉽게 변하지 않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선 항상 자기만의 고집을 가져온 감독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오즈 야스지로가 늘 가족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나 허우샤오시엔이 대만의 역사를 다룬 것 등 말이다.
임 당신의 영화는 중국의 아웃사이더라고 할까, 포커스를 받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주로 다뤄온 것 같다. 그게 방금 말한 자기 세계가 될까.
지아 그렇다. 다음 영화도 실업자, 노동자에 관한 거다. 아까 왜 악단을
찍을 생각을 했냐고 물었냐면, 어떤 인물을 찍는다는 것은 그에 대한 느낌과 감동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와이키키…>를
보면서 자꾸 내 영화가 생각났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문제의식이나 대중문화에서 정신적 영향을 받는다는 것 등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 속 노래들이 실제로 한국에서 어떤 역사와 정서를 가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나름대로 이 사회를 반영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내가 성장하던 시기는 중국이 막 개방되면서 외래의 대중문화, 대중음악을 받아들이던 때였는데, 그런 시대의 변화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신도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한데.
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와이키키…>의 경우 나의 성장 경험이 녹아 있다기보다 애초 아이디어는 친구에서
출발했고, 만드는 과정에서 실제 업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자라면서 느꼈던 문화적
정서는 아니다.
지아 <와이키키…>를 보면 당신이 관심을 갖는 인물이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이야기를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비슷하고. 난 그 절제된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폭발적으로 다 드러내는 게
아니라 내재적으로 표현하는 것 말이다.
임 과장하고 변형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내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쩌면 동양적인 특징 아닐까. 많이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많은 것을 완곡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동양적 전통의 영향인 것 같다.
지아 어떤 정체성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처한 상황이 동양적이라서,
그 문화적 전통이 절제된 방식의 영화를 만들게끔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영화는 서구에서 발명됐지만 20∼30년대 이후 아시아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것이다. 오즈 야스지로, 허우샤오시엔이 그랬듯이. 모든 감독들이 추구하는 것이겠지만, 나만의 표현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나한테는 그게 일상적인 것, 내 자신의 경험과 가까운 것들이다. 가장 관심있고, 잘 알고 있는 것. 그래서 <소무>에
나오는 인물들도 어릴 때 내 친구들, 같이 자라면서 보아온 사람들이다.
임 내가 일상과 리얼리즘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되는 것도,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어떤 나인가 하면…
난 관념적인 걸 싫어한다. 내가 보고, 느끼고, 그래서 머리나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에 영화스타일도
그렇게 나오는 것 같다.
시작은 언제나 맨발로
임 베이징아카데미에서 공부했는데,당신이 다닐 무렵이면 이전보다는 좀더 쉽게 영화를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였나.
지아 그전보다는 나았겠지만, 그때도 영화를 보기가 쉽지는 않았다. 보는
게 아니라 많이 읽었지. 맨 처음 좋아한 영화는 <대부>였다. (웃음) 그 다음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작가들. 시기마다 좋아하는
감독은 달랐지만, 그래도 처음에 좋아했던 감독들은 아직도 좋아하는 것 같다. 데시카, 펠리니, 오즈, 허우샤우시엔.
임 그래도 당신이 좋아하는 영화들은 당신의 영화와 관련있어 보이는데,
나는 내 영화와 아주 다른 영화들을 좋아한다. 처음 좋아한 영화는 성룡의 영화들이었다. (웃음) 감독이 돼야겠구나 하면서는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이 좋았고. 영화를 보기 힘든 건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한 15년 전에 파리로 갔는데, 그때 수많은 영화를 접하면서 동적이고 개성이
강렬한 작가들을 좋아하게 됐다. 파졸리니나 쿠스투리차, 파스빈더처럼 나와 다른 사람들.
지아 <와이키키…>도 직접 썼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 어디서
이야기를 끌어내나.
임 <와이키키…>는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 그 사람들의 인생사를
듣고 구성한 것이다. <세친구> 때는 취재를 많이 안 했다. 군대를 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들을 취재하기보다는 그냥
생각을 많이 하고 상상을 했다.
지아 난 시나리오를 쓸 때 전체적인 구조를 잡고 쓰는 게 아니라, 항상 세부적인 에피소드에서 시작해서 점점 늘려가는
식이다. 프로듀서는 빨리 써야 제작비를 끌어올 수 있다고 독촉하는데, 난 한신 한신마다 붙잡고 써야 하니까 아주 힘들고 머리 아프다. (웃음)
그렇다고 시놉시스를 잘 쓸 줄 아는 것도 아니고. (일동 웃음)
지아 한국은 영화산업이 발전하면서, 감독들이 비교적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중국은,
지하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영화를 찍고 싶어도 처음에는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상당히 곤란한 처지다.
임 영화자본이 커지면서 부스러기처럼 남는 돈이 독립영화로 가는 등 자본에
관한 한 한국쪽 사정이 아무래도 낫겠지.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독립영화나 작가주의영화는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 스탭들이 상업영화와
거의 겹치기 때문에 상업영화와 분리된 인력이 많지 않고, 아무래도 독립영화에 대한 이해도 떨어진다. 또 독립영화를 보는 관객도 너무 적다.
중국도 어렵겠지만, 당신처럼 국제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지원을 얻어 독립영화 작업을 하는 경우가 꽤 있지 않나. 한국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지아 사실 독립영화 인력 부족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탭들 대부분은 역시 메이저영화 스타일에 더 익숙해 있고,
또 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환경이니까. 개런티라든가 중국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일하고 싶어도 떠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학생 시절에 단편 작업할 때부터 이런 문제에 고민이 많았다. 난 94년 말에 찍은 <어느 날, 북경에서>를 함께했던 스탭들과
지금껏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제는 가족 같다. 가끔 농담으로 우린 꼭 마피아처럼 영화를 만든다며 웃는다. (웃음)
임 부럽다. 패밀리가 있다니.
지아 밖에서 보면 한국은 상황이 좋아보인다. 중국 감독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아주 왕성하게 여러 작품을 내놓는 것 같아 매번 좋겠다, 그러는데 막상 와보면 한국 사람들이 ‘아니다. 뭘 모르네’라고 한다. (웃음)
임 영화자본이 커진 만큼 한국 프로듀서들이 중국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구체적인 제안을 받지 않았나.
지아 아직은 없었다.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한국과 중국이 앞으로 많은 교류를 했으면 좋겠다. 문화적으로도 근접하니까.
임 다음 작품은 언제 만들 계획인가.
지아 좀 쉬었다가 내년쯤 할 생각이다. 당신은?
임 나는 조감독을 했던 친구가 데뷔작을 만드는데, 제작비를 구하기 어렵다고
해서 그 작품의 프로듀서를 먼저 할 것 같다.
진행·정리 황혜림 기자·최수임 기자 통역 박연진
▶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 감독,
감독을 만나다 - 임순례와 지아장커
▶ 평론가,
평론가를 만나다 - 임재철과 샤를 테송
▶ 평론가,
감독을 만나다 - 김봉석과 구로사와 기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