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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38편 프리뷰 [10]
김현정 2003-04-18

비트 다케시의 젊은 날의 초상

아사쿠사 키드 Asakusa Kid

디지털 스펙트럼 | 감독 시노자키 마코토 | 일본 | 2002년 | 111분

기타노 다케시의 자서전 <아사쿠사 키드>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코미디언을 꿈꾸는 청년 기타노 다케시는 연예인과 작가 지망생들이 모여드는 아사쿠사 지구의 스트립 클럽 ‘프랑스 좌’에 일자리를 얻는다. 엘리베이터 보이로 일하다가 코미디언 후카미의 제자가 된 기타노는 차츰 인기를 끌기 시작하고, 댄서와 코미디언들과 어울려 지내며 여러 밤을 보낸다.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로도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의 무명 시절을 담았지만, <아사쿠사 키드>는 재능과 행운이 빛나는 성공담과는 거리를 둔다. 시노자키 마코토는 일정한 직업이 없이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프리터’들의 이야기 <타임리스 멜로디>로 한국에 알려졌다. 활기차야 할 젊음을 느린 몸짓으로 보듬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사쿠사 키드>를 지배하는 정서는 좌절과 불안과 우울한 공기로 흔들리는 젊은 날의 그늘이다. 조금은 오만해진 기타노가 끝없이 돌바닥을 두드리며 연습하는 탭댄스의 스탭은 조그만 명성이 보답해주지 못하는, 세상 모르는 커다란 꿈의 울림인 듯도 하다. 기타노 다케시의 현재를 몰랐다면, <아사쿠사 키드>는 더욱 암울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남자로 살고 싶은, 한 여자의 꿈

한쪽 날개로 날다 Flying with One Wing

시네마 스케이프 | 감독 아소카 한다가마 | 스리랑카 | 2002년 | 81분

자동차에 치인 정비공이 버럭 화를 내며 병원에서 뛰쳐나온다. 그는 사실 여자였고, 아내에게까지 숨겨왔던 비밀을 지금 막 병원의사에게 들킨 것이다. 이날부터 그가 꿈꿔온 생활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손가락과 우윳병 꼭지를 빠는 버릇이 있는 의사는 첫눈에 반했다면서 그를 괴롭히고, 친하게 지내온 동료는 동성애의 감정을 고백한다. 사소한 사고로 시작된 균열은 결코 출발점으로 돌아가지 못할 비극으로 그를 몰고간다. 영화제가 아니라면 만나기 힘들 스리랑카영화 <한쪽 날개로 날다>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난한 나라의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남자로 살고 싶은 한 여자의 꿈은 성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기도 하다. 아내에게 큰소리 칠 권리, 담배 피우고 불평하고 선택할 권리가 남자에겐 있다고, 이 영화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들의 딱딱한 표정과 아낀 흔적이 묻어나는 촬영도 오히려 현실에 가깝게 보인다. 주연 아노마 자나다리와 프로듀서, 음악감독 등 대부분의 배우와 스탭들이 호평을 받은 전작 <이것은 나의 달>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차 안 여인들과의 10번의 대화

텐Ten

시네마 스케이프 |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프랑스, 이란 | 2002년 | 94분

짜증내는 10살짜리 아들과 소리치며 설득하는 엄마의 대화로 영화는 시작한다.아들은 아빠 엄마의 이혼이, 엄마의 새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나머지 세 사람,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동생, 성전에 가는 할머니, 테헤란의 매춘부가 시간을 두고 운전자의 옆자리를 번갈아가며 앉는다. 차 안에서 오가는 이들과의 10번의 ’대화’, 그것이 영화 <텐>이 보여주는 시각장 전부이다. 카메라는 외부로 벗어나지 않으며, 가끔씩만 바깥을 바라볼 뿐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비좁은 차의 앞좌석 공간만으로도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 허물기를 성공적으로 해낸다. 만약 키아로스타미의 전작들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쉽게 이 영화를 픽션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용기가 필요할 정도이다. 사실 그동안의 키아로스타미가 보여준 마술에 비하면 이 정도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지만, 최소한의 형식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제한된 관객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차 안의 대화는 수없이 많은 바깥의 문제로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버린다. 이 영화의 친숙함이 키아로스타미 스타일의 가장 단순한 미니멀리즘을 목도하는 것에 있다면, 이 영화의 낯섦은 그의 영화 중 가장 ‘비관적’인 마지막을 만난다는 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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