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대종상영화제 폐막, 심사 결과에 따른 비판 여론 들끓어
대종상영화제는 정녕 ‘비상구’가 없는 것일까. 지난 4월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상식을 거행하고 막을 내린 제38회 대종상영화제역시 심사의 공정성이 도마에 올라, 수많은 질타와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실추된 권위를 되찾고, 영화계 신·구세력의 화합을 이뤄내고자”
했던 이번 영화제는 그동안 행사를 주관해왔던 (사)한국영화인협회(이사장 유동훈)와 젊은 영화인들의 모임인 (사)한국영화인회의(이사장 이춘연)가
공동으로 준비하는 첫 자리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지만 올해도 심사과정에서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노출했다.
시상식은 실수연발, 인터넷은 심사 불만으로 폭발 직전
수상 결과에 대해 가장 빨리 불만이 확산되고 있는 곳은 인터넷 사이트. 이날 시상식에서 <공동경비구역 JSA>와 함께 수상 각축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던 <친구>가 한 부문도 수상하지 못한 반면, 쿠앤필름의 <하루>가 감독상, 심사위원 특별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자, 대종상 공식 사이트에는 “심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내용의 글들이 1만여건 이상 올려졌다. 관련 인터넷 사이트들도 “<친구>가
<하루>보다 못할 것이 어디 있느냐”며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감독상 후보에조차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들로 가득 찼다.
심지어 TV중계를 통해 시상식을 본 일반인들도 “감독상이나 심사위원 특별상의 경우, 심사결과가 발표되자 수상자는 물론 시상식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며 이번 심사과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물론 영화인들의
반발도 거세다. “들러리선 기분이다. 내년엔 절대 출품하지 않겠다”, “이런 수상결과라면 상을 받는다는 게 부끄러울 것 같다”, “한국의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는데 스스로 이렇게 먹칠해도 되는가” 등 올해 수상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게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 영화인들의
반응이다.
한편 어이없는 소동들이 연이어 터진 이날 시상식장 풍경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2시간40분 동안 진행된 것에 비해 프로그램 내용이 부실한
것은 중계방송사의 탓으로 돌리더라도 심사위원 특별상의 경우 수상 리스트가 전달되지 않아 무대 아래에서 수상작을 불러대는 해프닝을 연출하는가
하면, 단편영화상 수상작인 <팬지와 담쟁이>를 <편지와 달팽이>로 부르는 등의 실수는 그냥 참아 넘기기에 민망한 장면이었다. 또한 기술,
애니메이션 부문들의 수상자에게는 소감을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아 수상자들을 머쓱하게 만들었고, 이와 달리 시상을 위해 무대에 선 영화계
원로들에게는 듣기에 별로 유쾌하지 않은 환담을 허용했다. 한편 지난해 수상자가 참석하지 않은 남우주연상의 경우 수상자를 발표자로 내세운
것이나 주요 부문 시상에서 배우들이 협찬사 대표들을 대동해야 한 상황 등에 대해서는 공동주최를 하긴 했지만 “방송사에 너무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흘러나왔다.
신·구 갈등해소? 더 큰 갈등의 불씨!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인들과 관객의 원성을 산 것은 심사결과의 공정성에 관한 부분이었다. 수상작이 발표된 뒤 이를둘러싼 논란이 가속화하자 행사를 공동 주최한 영협의 유동훈 이사장은 “미비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심사과정이나 결과는 공정했고 집행위원회가
마련한 규정을 지켰다”고 말했다. 또한 “대종상은 지금껏 보수적인 색깔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상업적이고 폭력적인 <친구>보다 인명을 존중한다는
줄거리나 내러티브 전개 방식에서 <하루>가 심사위원단에 참여한 원로 영화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영화인회의쪽이나
대종상 사무국은 이 사안에 대해 아직 이렇다, 저렇다 할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심사에 참여했던 한 심사위원은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심사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모두 열거할 수 없지만, “작품 선정을 놓고
의견 교환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지적한다. 영화계 원로들의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인 회의 진행방식에 혀를 내둘렀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심사위원장이 교체된 경위다. 4월11일부터 시작된 출품작 심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영협쪽 추천을 받은 심사위원장 정진우 감독과 심사위원
변장호 감독이 심사와 상관없이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몸싸움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변장호 감독이 출품작 시사에 참여하지 않고 퇴장했다.
올해부터 출품작 공개시사에 참여해야만 표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규정에 둔 만큼, <친구>를 비롯해 출품작 시사에 참여하지 않은
해당위원은 표결권을 갖지 못하는 게 순리. 하지만 영협쪽은 이 과정에서 표결권이 없는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의 직무를 바꾸는 편법을 심사위원들에게
제안했다. 영화인회의쪽 추천을 받은 심사위원은 당연히 문제 삼아야 했겠지만, “신·구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영화제이니만큼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졸지에 변장호 감독이 심사위원장으로, 정진우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뒤바뀐 것이다.
물론 영협쪽의 제안이 조직적인 표결 행사를 위해 사전에 조율된 것이었다고 볼 수만은 없다. 두 사람 모두 영협의 추천을 받은 심사위원이기
때문. 하지만 1표라도 잃지 않으려는 영협쪽 태도가 낳은 편법 운영임은 명백하다. 결과적으로 감독상의 경우 김기덕 감독의 <섬>과 경합,
재투표까지 동수가 나오자 심사위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서 <하루>의 한지승 감독이 수상했다. 심사위원 특별상은 규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규정은 최우수 작품상 선정 때 2등을 한 작품에 심사위원 특별상을 주도록 돼 있었다. 결국 <공동경비구역 JSA>가 심사위원 9인 중 8표를
얻어 최우수작품상을 가져가자 겨우 1표를 받은 <하루>가 수상하게 됐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심사위원 특별상은 따로 투표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왔지만, 원로들이 올해 바뀐 이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위원구성부터 문제 연발, 빡빡한 진행이 문제 증폭
문제는 어찌 보면 성난 네티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루>가 주요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대종상영화제는 해마다심사의 공정성을 내세워 규정을 보완해 왔지만, 정작 심사과정에서는 유명무실한 약속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예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영협의 주장대로 규정에 따라야 한다면, 개인적 몸싸움 때문에 규정을 지키지 못한 심사위원은 표결권을 내놓고서 사퇴해야 옳다. 이에
대해 유동훈 이사장은 “본인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양쪽으로부터 추천받은 심사위원 수가 4:4로 동수를 이뤄 심사
진행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고려했고, 해당 심사위원이 <친구> 등을 개인적으로 본 사실이 분명한데 사퇴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고 해명한다.
“1∼2편의 영화를 못 보는 경우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지금까지 그런 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와의 절연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반론엔 뭐라 답할까.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면, 애초 심사위원 구성과정부터 문제가 있었다. 지난 4월11일 모습을 드러낸 심사위원단은 집행위원회가 유동훈 영협
이사장과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에게 위임해 결정한 인물들이다. 양쪽 동수로 구성된 집행위원들이 함께 심사위원 선정 합의를 할 경우 의견합일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영화인회의 이춘연 이사장은 출품작인 <인터뷰>를 제작사의 대표라서 ‘규정상’ 심사위원 위촉이 불가능했다.
결국 영화인회의쪽이 복수로 추천한 명단을 갖고서 영화인회의 실무자와 영협 이사장이 합의하에 결정했다. 애초 영화인회의와 영협이 추천한 심사위원은
5:5 동수였다. 하지만 SBS 쪽 심사위원이 들어오며 영화인회의는 1석을 ‘양보’했다. 영협 쪽 심사위원이 투표권이 없는 심사위원장을
맡으면서 외형상 균형이 이뤄진 듯 했지만, 심사위원장에겐 감독상 선정 때 행사한 캐스팅보트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심사위원 구성부터 영화인회의는
영협의 입김에 휘둘린 셈이다. “개혁이 한순간에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참 순진했다”는 한 심사위원의 푸념도 이와 동일선상에서 이해된다.
한 영화계 인사는 “영협이 추천한 단체장 출신 인사들과 영화인회의가 추천한 평론가, 교수가 같은 자리에 앉아 심사를 하는 것 자체가 부조화다.
다양한 견해를 수렴하기 위해서라지만 주도권을 어느 쪽에서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영협쪽은 견해를
달리한다. 오랜 현장 경험을 해온 영협 추천인사들과 평론가, 교수 출신 등이 포진했기에 작품 선정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최근 몇년간 반목했던 영협과 영화인회의가 한 목소리를 내기로 한 대종상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엉뚱한 결과를 낳았다.
또다른 문제점도 있다. 방송 일정에 맞춰 빡빡한 심사 일정을 강행, 수상작을 고르기 위해 각 부문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 무엇인지 충분한
토론을 끌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는 것이다. 영화제 심사를 지켜본 한 영화인은 “형식적으로 단심제를 채택했지만, 심사방식은 과거보다
더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애초에 심사 대상도 되지 못할 영화들까지 다 봐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것. 대안으로 여러 번 제시됐지만,
50명 이상의 추천인단이 부문별 해당작을 고르는 절차를 거쳐서 심사위원들이 판단해야 할 대상들을 좁혀주고, 심사의 경우 좀더 심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영협쪽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으로 그 추천인단을 아우르기가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문제는 개선의지이지, 현실적 어려움이 아니다.
폐지 외엔 대안 없나
그간 38회를 치르면서 대종상영화제는 자주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심지어 감독상을 놓고 법정 공방까지 가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고,
제34회 때는 작품성은 그만두고 완성도 자체가 떨어지는 김호선 감독의 <애니깽>이 주요상을 휩쓸어 결국 이듬해 대종상 자체를 좌초시키기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 지난 2년간 평단과 관객의 지지를 골고루 받은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과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 주요
부문의 상이 주어졌던 것은 그 위축된 대종상을 회생시킬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대종상영화제를 폐지하는 것이 최선책일까. 이처럼 과격한 주장을 펼치기는 쉽지 않다. 40년이 다 되는 대종상에 애정을 갖고 있는
영화인들도 그 역사만큼이나 많다. 문제는 그런 역사에 걸맞은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관객에게도 외면받고 영화인들도
인정 못할 영화제로 주저앉느냐, 새로운 도약을 하느냐는 기로에서 제38회 대종상은 분명 잘못된 선택을 했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길
주최쪽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글 이영진 기자 사진 정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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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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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회 대종상 영화제 수상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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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대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