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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2001-04-20

꿈에서 ‘꿈’을 배우다

인간이 꿈을 만드는 원리, 그러니까 생생한 영상을 재료로 허구의 상황을 조직하는 원리는

영화의 서사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꿈은 영화보다 더 비합리적이고, 더 부조리하지만 영상을 엮어 ‘서사’를 만든다는 점에서 꿈과 영화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진중권 | 문학평론가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펴냄/ 1만2500원(상·하 각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 중에 <꿈>(유메)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인데 듣자 하니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한다. <꿈>은 여러 사람이 꾼 꿈을 그대로 영화로 옮긴 작품인데, 전체 줄거리 없이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는 자막과 함께 여러

가지 꿈이 옴니버스 스타일로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정말로 꿈속의 장면을 방불하게끔 화면을 처리한 기법도 돋보이지만 일본인, 일본사,

일본문화와 일본사회를 꿈이라는 무의식의 스펙트럼으로 들여다보겠다는 발상이 더 재미있다. 이렇게 꿈을 그대로 필름에 담아도 한편의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밤에 꾸는 꿈이요 다른 하나는 대낮에 꾸는 ‘백일몽’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예술을 백일몽의

범주에 집어넣는다. 만약 예술이 일종의 꿈이라면, 예술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은 난해한 철학적 개념으로 가득 찬 미학의 미로에서 헤매느니 차라리

프로이트가 분석한 꿈의 원리를 읽는 게 낫다. 사실 모든 예술 중 영화처럼 꿈에 가까운 장르가 또 어디 있는가. 우리는 꿈을 마치 영화장면처럼

상상하지 않는가. 꿈을 꿀 때 우리는 글자나 음표나 물감으로 그려진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영화처럼 생생한 영상을 본다. 현실과 똑같은 그

생생한 영상이 꿈의 허구를 이루며 또한 영화의 허구를 이룬다.

인간이 꿈을 만드는 원리, 그러니까 생생한 영상을 재료로 허구의 상황을 조직하는 원리는 영화의 서사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꿈은 영화보다

더 비합리적이고, 더 부조리하지만 영상을 엮어 ‘서사’를 만든다는 점에서 꿈과 영화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따라서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제시한 ‘꿈 생산의 메커니즘’은 영화적 서사를 구성할 때 충분히 참고할 만할 게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의 이미지는 크게 ‘응축’과 ‘전이’라는

방법으로 생산된다. 응축이란 하나의 이미지가 여러 사물의 이미지를 압축해 함께 담는 것을, 전이란 한 사물이 그와 유사한 다른 사물로 둔갑해

등장하는 것이다. 문학적 용어를 빌리면 응축은 환유나 제유, 전이는 은유와 관계가 있다.

<꿈의 해석>과 꼭 함께 읽어야 할 두개의 글이 있다. 먼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이 책에서 프레이저는 주술을 ‘동종주술’과

‘감염주술’로 구분한다. 동종주술이란 (누군가를 해치려고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하나의 사물을 그것과 유사한 다른 사물로 대체하는

것을 말하고, 감염주술이란 (연기를 피워올려 비를 내리는 것처럼) 한 사물을 그것과 인접한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두 번째 텍스트는

로만 야콥슨의 <일반언어학 이론>에 실린 ‘언어의 두 측면과 실어증의 두 유형’이라는 글이다. 여기서 저자는 인간의 언어능력을 인접연상과

유사연상의 두축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환유를 주로 사용하는 소설가들은 인접연상이, 은유를 주로 사용하는 시인들은 유사연상이 발달했다고

한다. 또 한 화면 안에 여러 사물을 응축시켜 집어넣는 입체파 화가들은 인접연상이, 반면 하나의 사물을 다른 사물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유사연상이 발달했다고 한다.

예술이라는 인간의 활동은 주술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언어의 두 측면을 이루는 두 가지 연상작용은 각각 환유와 은유라는 예술창작의 고전적 기법을

낳는다. 그리고 프로이트에 따르면 예술은 꿈의 일종이자 그것의 연장이다. 자, 이제 인류학, 언어학, 정신분석학이라는 상이한 영역에서 따온

이 세 텍스트를 충돌시켜보자. 그럼 그 안에서 불현듯 어떤 공통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프로이트, 야콥슨, 프레이저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실은 예술에 관련하여 동일한 측면 혹은 원리를 지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즉 이들은 모두 우리가 예술적 이미지와 서사를 구성할 때 사용하는

두 가지 원리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응축’과 ‘전이’ 외에도 프로이트 책에는 꿈에 자주 사용되는 상징의 문제, 꿈에 들어가는 논리와 감정의 문제 등 꿈의 서사를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한 풍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스크린 위에 영화라는 백일몽을 비추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밤에 꾸는 꿈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만 레이처럼

프로이트를 읽고 굳이 초현실주의적인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다. 꿈에는 하나의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다양한 방법이 들어 있기에, 간접성을

생명으로 하는 예술적 표현의 문제로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그 안에서 배울 게 좀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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