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니까. 그러나 외국어를 익히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모든 사람이 그 시간과 노력을 낼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어렵지만, 외국어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외국어에 대해서 배우는 것만 해도,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고종석 | 한국일보 편집위원
통나무 펴냄 / 8천원영어권 바깥의 여느 사회처럼, 한국에서도 가장 흔히 접하는 외국어는 영어다. 그 다음은? 한때 우리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제2외국어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뿐이었다. 그러면 독일어나 프랑스어가? 물론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독일어나 프랑스어는 그 언어권 국가의 대사관이나 문화원에 갇힌 언어(였)다.
그러면 일본어?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필자의 부모 세대만 해도 일본어로 학교 공부를 시작했고, 서울의 호텔은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 관광객으로
바글거리니. 그러나 필자 생각에 영어 다음으로 한국인들이 자주 접한 언어는 중국어인 것 같다.
이제는 많이 줄었지만, 예전의 서울에는 화교들이 직접 운영하는 중국 음식점이 수두룩했다. 그런 음식점엘 가면 자연히 그들(집주인과 가족들)끼리
쓰는 중국어를 듣게 된다. 그러나 중국 음식점 이상으로 중국어를 흔히 들을 수 있는 데가 있었으니, 그곳은 극장이었다. 언제부턴가 한풀 죽기는
했으나,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 후반에는 영화 하면(서부영화와 함께) 중국(아마 홍콩이겠지만) 무협영화였다. 어린이들에게 왕유라는
이름은 신영균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친숙했다. 적어도 60년대 말까지, 중국어는 영어와 함께 한국의 극장가를 양분한 외국어였을 것이다. 그 당시의
중국 무협영화는 70년대의 브루스 리 영화와도 달랐다. 브루스 리의 몸놀림이 무술가의 몸놀림이었다면, 왕유의 몸놀림은 초인이나 신선, 도사의
몸놀림이었다. 왕유의 무협영화는 그러니까 만화영화에 가까웠다. 5월은 해마다 푸르렀고, 그런 ‘만화영화’들을 보며 우리는 자랐다. 얼마 전,
한 친구에게서 괜찮은 영화라는 얘기를 듣고 <와호장룡>을 비디오로 봤는데, 완전히 60년대풍의 리바이벌이더구먼.
그러나 중국어에 능통한 한국인들은 거의 없(었)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또는 일본군 밀정 노릇을 하기 위해, 또는 장사나 공부를 하기 위해
일제 때 대륙에 머물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것은 분단과 6·25 이후 중국이 오래도록 우리에게 ‘적성 국가’였던 사정과 큰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정이 달라지고는 있다. 우리는 마침내 중국과 수교했고, 대학의 중문학과는 늘어나고 있고, 요즘은 외국어 고등학교에서도 중국어과에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몰린다고 한다.
바깥 사회를 배우는 최량의 길은 그 사회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언어는 문화의 거푸집이면서 알맹이니까. 그러나 외국어를 익히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모든 사람이 그 시간과 노력을 낼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어렵지만, 외국어에 ‘대해서’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외국어에 대해서 배우는 것만 해도,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연세대 최영애 교수가 지난 98년에 상재한 <중국어란 무엇인가>는 중국어를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중국어에 ‘대해서’ 가르치는 책이다.
물론 최 교수는 이 책을 중국어학 전공자들을 위한 입문서로 썼겠지만, 필자는 중국어를 한마디도 모르는 그리고 앞으로도 배울 생각이 없는 문외한으로서
그저 재미로 읽었다. 이 책은 중국어의 개념과 그 유형적 특징 그리고 이웃 언어들과의 교류를 개관한 서론 외에 ‘북경어의 음운 체계’, ‘중국어
문자’, ‘중국어 문법’의 세장으로 이뤄져 있다. 여느 외국어에 대한 설명이라면 음운 체계나 문자는 서론에서 살짝 스쳐 지나가고 문법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을 테지만, 특이한 음운 체계와 문자 체계를 지닌 언어에 대한 설명이다보니 문법부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또
전통적인 중국 언어학계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의 언어 연구 전통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언어 연구에서 음운학과 문자학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게다가, 사용하는 어휘의 반 이상이 중국계 어휘이고 아직까지도 부분적으로 한자를 병용하고 있는 한국어 화자들에게는 중국어의 문법보다
음운 체계나 문자에 대한 설명이 더 흥미로울 것이다.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어 죽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언어학의 기본 개념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껄끄러울
부분들이 군데군데 있다. 그런 부분들을 더 밋밋하게 만드는 것은 저자의 건조한 문체다. 최 교수의 문체는 그의 부군인 김용옥씨의 문체와는 달리
현하지변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게 껄끄러운 부분을 만나면 어쩐담. 뛰어넘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을 다 읽고나면, 극장 안에서 듣는
중국어가 (결코 이해되지야 않겠지만) 한결 푸근해질 것이다.
▶ 영화의
친구들, 엉뚱한 책을 권하다
▶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리
실버의 <리메이킹 에덴>
▶ 홍성용의
<영화 속의 건축 이야기>
▶ 최영애의
<중국어란 무엇인가>
▶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 장호연·이용우·최지선의
<오프 더 레코드: 인디록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