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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부산간다 - 둘쨋날 III
2001-04-06

불멸의 고향, 소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둘쨋날 III

오후 5시 영도다리 | 내기 하는 아이들

“어제 우리 엄마가 일본에서 테레비 녹음기 가지왔드라.”

“테레비 녹음기? 그기 뭐고?”

“녹음기처럼 테레비를 녹음할 수 있는 거.”

“꽁까지 마라, 임마! 세상에 그런 기 어데 있노?”

“아이다. 진짜다. 그라믄 느그 내캉 내기 할래?”

“같이 죽자”는 말은 부산에서 흔히 쓰인다. 특이한 건 열에 아홉은 장소가 영도다리라는 사실이다. 그건 부산에서 난 사람들에게는 이 다리가

친숙한 구조물이라는 방증이다. 죽음의 장소로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영도다리는 그리 높지 않은, 길지 않은 다리다. 서울 한강다리의 아찔함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완만한 아치형의 다리는 오히려 ‘울컥’, 마음 한구석이 허물어진 이들에게 맘껏 기대라며 등을 내어주는 서글서글한

형이나 곱디고운 누나 같다. 곽 감독도 영도다리에 한번 신세를 졌다. 99년 <친구>의 시나리오를 쓰러 부산에 내려왔지만, 투자하기로 했던

삼부파이낸스 회장이 구속됐다는 소식을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었다. 하지만 그는 예정대로 영도다리 위에서 헌팅을 강행했다. 비오는 날, 우산과 디지털

카메라를 한손에 들고서 ‘억수로’ 운이 없는 사내는 이 영화를 꼭 찍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50년 전 한국전쟁 당시 굳센 금순이를 찾지 않더라도,

힘들 때 영도다리를 찾은 이는 ‘수도 없이’ 많다. <친구> 개봉은 그래서 곽 감독에게 남다르다. 영도다리가 베푼 아량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옆에 부산대교가 개통된데다 근처에 100층이 넘는 백화점이 들어서는 판에 영도다리는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친구>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촬영을 시작한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크고 새로운 것에 밀려 결국은 소멸해야 할, 낡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연민은 영화뿐 아니라 이곳,

영도다리에도 배어 있다.

“첫 장면을 찍는데 비가 오다 안 오다 해서 시껍했지요. 오후 촬영은 아예 못하게 됐고. 풀숏으로 잡은 뒤 영도다리 저쪽에서 네 녀석들이 내기하며

걷는 장면을 찍는 것이었는데. 그건 둘째치더라도 영도다리 양쪽을 통제하고 옛날 자동차 20대를 운행시키는 것도 힘들었고. 뭣보다 첫날부터 날씨가

이러니 다른 사람들이 찝찝했을 텐데. 그래도 그런 이야기 안 있습니까. 첫날 비오면 대박 터진다는 말. 그걸로 위안 삼았십니다. 8일 내내

말입니다.”

감독의 모교이기도 한 토성초등학교 앞 문방구에는 별다른 세월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구 쑤셔놓은 것 같지만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박혀

있는 문구들이며 줄줄이 매달려 있는 준비물 봉지 같은 것들도 나이를 먹지 않은 것 같다. 그저 20년도 넘게 문방구를 지키던 아줌마만이 어느덧

머리 희끗한 할머니가 되어 있었을 뿐. 딱지다발, 옷갈아 입히는 종이인형, 흘림체로 ‘필승’이라고 써 있는 쌍절곤, ‘알다마’ 같은 향수어린

소품들은 국제시장 장난감점 창고에서 간신히 찾아냈다. 스프링달린 장난감 재크나이프로 준석의 배를 장난스럽게 찌르던 동수의 순진한 미소가, 이들이

10여년 뒤와 연결시키면 잠시 아찔해진다. “커서는 동수하고는 좀 서먹해졌지만 어릴 때는 놀러도 많이 댕기고 진짜 친했죠. 근데 어릴 때부터

금마가 얼마나 살벌했었냐면 한번 중학생하고 싸운 적이 있었는데, 지가 졌어. 며칠 있다가 그 중학생이 생일이라고 화해도 할 겸 즈그집에 초대를

했는데 동수가 문걸어 잠그고 뒤에서 손가락 집어넣어서 그아 입을 찢어버렸다고…, 독종이에요, 독종. 영화에서 동수는 많이 완화한 거죠.” 문방구

뒤에 붙어 있는 작은 골목은 아이들이 도색잡지의 ‘월경사진’을 암거래하던 그곳이다.

오후 7시 대신동 | 준석이집 담벼락 아래

“5학년 때, 연탄집 멍길이가 내 입술이 빨간 거는 우리 아부지가 죽은 사람 간을

많이 묵이서 그렇다고 놀릿다 아이가. 금마는 그때 중학생인데, 니가 내 대신 한판 붙었다 아이가. 그 다음부터 내가 니 따라 댕깃고.”

“그랬나….”

”… 내는…, 내일부터 상곤이 행님 밑으로 들어간다.”

“거기는 건달 아니다. 양아치다. 모르나? 꼬마들한테도 약파는 거.”

“상관없다. 장의사보다 났다 아이가?”

녹슨 철문 뒤로 봄꽃들은 꽃망울을 튀우고 있었고 그속에 단아하게 자리잡은 왜식가옥은 몇달을 풀어도 모자랄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아들을 조직의 품으로 떠나보내는 아버지가 하염없이 응시하던 그 골목, 동수와 준석이 ‘친구’로서 등을 맞댄 마지막 장소. 두 사내의 운명은

그렇게 각기 다른 길로 들어섰다. 잠시, 어두운 골목길 속으로 퇴장하는 연극배우처럼 사라져가던 동수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준석집 골목에서 곧장 올라가다보면 보이는 구덕운동장 건너편의 문화아파트 지하에는 16년 전통을 자랑하는 ‘88롤라장’이 있다. 이제는 없어진

신천지백화점의 ‘신천지롤라장’이나 유나백화점 아래 ‘중탁(중앙탁구장)롤라장’이 진짜 무대이지만 촬영은 비교적 모습이 잘 보존돼 있는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중앙에 위치한 DJ부스는 주인아줌마 말에 따르면 한때 “아르바이트 하려는 아이들이 줄을 섰다”지만 지금은 텅 비어있다. 오후의

한산한 롤라장엔 초등학생 몇명이 쌩쌩 신나게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황기석 촬영감독이 대부분 롤라를 직접 신고 찍었어요. 황 감독, 롤라

잘 타더라고. 신기한게 그때 미국에서도 한인아이들이 갈 데 없으면 잘 가는 데가 롤라장이었다나봐요.” 지하에 위치한 롤라장에서 나오니 밖은

어느새 어둑한 땅거미를 드리우고 있었다.

▶`친구`

따라 부산간다

▶`친구`

따라 부산간다 - 첫쨋날

▶`친구`

따라 부산간다 - 둘쨋날 I

▶`친구`

따라 부산간다 - 둘쨋날 II

▶`친구`

따라 부산간다 - 셋쨋날

▶<친구>

배우 이재용이 본 ‘부산’

▶<친구>

촬영감독 황기석이 본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