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쨋날 I
아침 일찍 서두른 탓인지 일요일의 도로는 한산했다. 어렵고 고되던 네 친구의 성장과 다르게 유년의 바닷가로 향하는 길은막힘없이 뻗어 있었다. 송정을 지나 기장으로 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보면 다다르는 자그마한 항. 생 멸치회로 유명하다는 대변항 근처 방파제는
동수(장동건)가 준석의 조직을 밀고하고 난 뒤, 노을지는 방파제에 쪼그려 앉아 씁쓸히 담배를 피우다가 탁한 목소리로 “은기야, 니 조오련이
아나…” 하며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던 곳이다. “차가 들어올 만한 방파제가 별로 없더라구요. 여기가 제일 적당한데 낚시꾼들이
안 비켜가지고 혼났어요, 그 장면은 열흘 동안 두번을 찍었는데 동건씨 표정이 날이 갈수록 달라졌어요. 인물에 몰입을 하니까 근육 움직임까지도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아침 10시 대변 자갈밭 | 바닷가 친구들
“상택아, 니는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하고 바다거북이하고 헤엄치기 시합하믄 누가이길껏 같노.”
“조오련.”
“그 봐라.”
“아이다, 거북이가 물 속에서는 얼마나 빠른데.”
“물 속말고, 물 위에서.”
“임마! 니가 아까는 물 속에서라고 했다 아이가.”
“내가? 내가 언제.”
“와! 쌔끼, 진짜 꼬롬하네.”
비를 뿌릴 듯 어둑한 시내 날씨와 다르게 아이들의 해수욕장면을 찍었던 대변근처 자갈밭은 해가 쨍쨍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할 정도로 큰 검정색
고무튜브에 매달린 아이들이 <호기심천국>에나 물어봐야 할 것 같은 황당한 호기심에 목숨 내걸고 집착하던 그 시절엔 뚜렷한 적도, 뚜렷한 동지도
없었다. 아니, 그런 구분조차 필요없었는지도 모르지….
“준석이랑은 6학년 때 같은반 짝지였어요. 우리 어릴 때는 살벌하게 놀았거든요. 학교에서는 ‘까기’라는 패싸움 놀이가 유행했는데, 내가 덩치가
커서 그런지, 준석이편하고 내편하고 갈려가지고 싸움도 마이 했지요. 어려서 그런가, 오히려 싸우면서 친해진 것 같아요. 내가 금마한테 실수도
참 마이 했는데…. 왜, 학교 다닐 때 새마을어머니회 같은 거 하잖아요. 교실 뒤편에 엄마들 쭉 서 있는데 다른 엄마들은 다 수수한데 한 여자가
화장을 유독 찐하게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저거 술집 다니는 여자 아니가, 저래가 즈그아 학교 오고 싶나?’ 했는데 준석이가 ‘고마해라,
임마’ 하더라고. 그래서 ‘뭐? 임마’ 했더니만 ‘우리 엄마다’ 그라는 기라요. 와, 그때 미안했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땀이 나요.
화내도 모자랄 텐데, 새끼, 그런 거 보면 임마가 어릴 때부터 내보다 훨씬 조숙하고 그릇도 컸던 거 같애요.”
정오 범일동 삼일극장 앞 | 극장 패싸움
“볼래?”“저 껄뱅이 새끼들하고 같이?”
“상관있나?”
범일동 가는 길부터는 곽 감독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전날 저녁을 겸한 술자리에서 ‘웰컴’이라는 환사를 던진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나보다. 기차길 옆 극장들은 곽 감독 표현대로 대부분 ‘화제작’ 일색이다. 지난해에 상영해놓고 떼지 않은 ‘살색’ 광고물들을 보면
지금 개봉중인 <말레나> <클럽 버터플라이> 등은 ‘아트’에 가깝다. “예전에는 개봉관이었어요. 여기서 <소림사 18동인>이랑 <부메랑>도
봤는데. 이런 구식극장도 이제 거의 마지막이죠.” 일요일 정오, 3천원에 두 프로를 ‘땡길 수’ 있는 저렴한 극장이지만, 삼일극장 안은 여남은명의
초로 신사들이 전부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전국노래자랑 프로그램을 흘깃거리며, 장기판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화관은400석 가까운 그리 작지 않은 단관이지만, 잠을 청하고 있는 손님조차 한명 없다. 골골한 냉기만이 흐른다.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했던 극장
주인은 아까부터 곽 감독에게 연신 불평을 해댄다. “화장실 소변기랑 유리창이랑 갈아준다 케놓고 어찌 됐십니까. 저번에 담당자가 한번 나와선
휙 둘러보고 그냥 가뿟거든요.” <벤허> 간판까지 이곳에서 해결하는 등 톡톡히 신세를 졌는데 제때 못 갚았다는 미안함이 곽 감독을 채근한다.
“제가 전화를 했거든예. 곧바로 올깁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안심하는 주인장.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2층의 영사기는 ‘떨그덕, 떨그덕’
하면서 잠깐의 소란이 신기한 듯 더 부지런히 도는 것 같다. “지나가던 한 아줌마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진짜 황당한 일 아입니까.
<벤허> 간판이 걸린데다 100명 가까운 교복 차림의 남학생들이 쭉 일렬로 섰으니. 신기했겠지요. 무슨 타임머신 타고 8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하긴 했을 깁니다. 영화상영 전에 나오는 촌스런 광고들이 진짜나고요? 촬영 퍼스트와 조감독이 같이 만든 ‘작품’입니다. 대낮부터 술
한잔 묵고 찍은 건데, 거기 나오는 안경점은 사실 제 친구가 사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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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부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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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부산간다 - 첫쨋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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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용이 본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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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감독 황기석이 본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