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도시 부산, 곽경택 감독과 함께 한 2박3일간의 추억 순례기
항구는 떠돌이들의 정거장이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채운 아이들의 부모들은 모두 고향이 달랐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물을라치면 모두 하는 일도 달랐다. 어떤 아이의 아버지는 러시아로, 일본으로 배 타고 떠나 반년에 한번씩 생선독이 올라
부어오른 손에 돈뭉치를 들고 나타나기도 했고, 어떤 아이의 어머니는 벽돌색 ‘다라이’에 비린내 풍기는 생선들을 담고 녹아내릴 듯 아픈 삭신을
새벽시장 앞 약국에서 산 한 움큼의 진통제로 달래며 하루살이처럼 살아가기도 했다. 유난히 ‘이모’가 많은 친구의 어머니는 몸을 팔았고,
유난히 ‘삼촌’이 많은 친구의 아버지는 깡패였다.
1950년대 말, 사진작가 최민식의 망막에 잡힌 부산의 아이들. 시장통 한구석에서 국숫발을 끌어올리던 벌거숭이 여자아이나 산동네 중턱으로
오르는 리어카를 밀어올리던 사내아이, 힘없이 늘어진 어미의 젖을 힘차게 빨고 있는 갓난아이. 세월은 이들을 부모로 만들었고 이들이 낳은
자식들은 전쟁이 남긴 아픈 기억 대신 폐허 위에, 혹은 왜색 짙던 건물 위에 날이 다르게 세워지던 신식건물들 사이를 뜀박질하며 자라났다.
1964년 장의사집 아들로, 건달의 자식으로, 밀수꾼의 귀염둥이로, 의사집 귀공자로 태어난 4명의 친구들은 매캐한 소독차 뒤꽁무니를 쫓으며
도둑질을 할 때도, 바닷가에서 패를 나눠 쌈질을 할 때도 자신들의 운명이 어떤 궤도를 타게 될지 몰랐다. 서울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욕구와
그러지 못하는 망설임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만조와 간조처럼 넘실거렸던 사춘기를 지날 때도 그들은 결코 서로 “미안한 거 없는” 친구였다.
그러나 결국 항구가 낳은 자식들은 서로의 배에 칼을 꽂는 얄궂은 운명의 장난에 빠져들었고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된 아들의 시체를 눈물로 염했다.
‘오토바이 체인’에 ‘칠공주 면도날’ 같은 폼나는 전설 대신, 30대 중반을 넘긴 한 감독이 풀어놓는 친구들의 ‘진짜 이야기’는 어찌 보면
‘쪽팔린’ 기억들이다. 하여 이제는 더이상 소년이 아닌 감독과 <친구>의 촬영현장을 따라가는 2박3일의 짧은 여정은 “솔직히 그동안 친구들에게
무심했다”는 감독의 속죄의 순례였다. 그러나 항구는 <`call me`>가 흘러나오는 ‘롤라장’이나 교묘히 제조한 ‘11장 회수권’ 초등학교
앞 ‘아트론 전자오락기’처럼 향수어린 기억과의 아련한 스침 역시 넓은 품으로 허락해주었다.
부산=글 이영진 기자 anti@hani.co.kr
백은하 기자 lucie@hani.co.kr
사진 손홍주 기자 light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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