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에서 <스웨팅 불리츠>까지,미리 보는 2001∼2003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전략
지난 2월14일, 뉴욕의 거리는 꽃다발의 물결로 가득했다. 밸런타인 데이. 한국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지만, 이곳에서는 연인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다지는 날이다. 2001년 여름부터 2003년 가을까지 디즈니가 준비하는 애니메이션의 프리젠테이션이 열리는 소니
링컨 시어터로 가는 길마다 빨간 장미 다발을 든 배달원들이 분주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사람들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낯선 이국에서, 타인의 사랑의 징표를 보는 것은 더욱 낯설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주
익숙하고 정감있지만, ‘다른 세계’.
센트럴 파크를 끼고 돌면 나오는 링컨센터, 그 건너편에 자리잡은 소니 링컨 시어터는 아이맥스관도 하나 있는 큰 멀티플렉스다. 앉으면 꺼질 듯
뒤로 젖혀지는 기능적이면서도 아주 편한 의자에 앉아, 앞으로 3년간 보게 될 8편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미리 만났다. 올해 여름의 <아틀란티스>(Atlantis:
The Lost Empire), 겨울의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s, Inc.), 2002년 2월의 <피터팬>(Peter Pan in
Return to Never Land), 여름의 <릴로와 스티치>(Lilo & Stitch), 겨울의 <보물 행성>(Treasure Planet),
2003년 여름의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가을의 <스웨팅 불리츠>(Sweating Bullets). 그리고 아이맥스로
올해 봄에 공개될 <미녀와 야수>까지.
3년간 8편. <토이 스토리>로 픽사의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합세하면서 1년에 두편의 애니메이션을 공개한 적도 꽤 있지만 1년에 2, 3편의
애니메이션을 연속하여 상영한다는 디즈니의 전략은 야심차다.
디즈니 100년, 신화는 계속된다
양만이 아니다. 픽사의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몬스터 주식회사>와 <니모를 찾아서> 2편이 예정되어 있고, <미녀와 야수>는 아이맥스판으로 재개봉된다.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도 뮤지컬 중심에서 벗어나 SF, 서부극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SF에의 편중. <릴로와 스티치>
<보물 행성> <아틀란티스>는 많건 작건, SF 스타일을 차용한 애니메이션이다. <스웨팅 불리츠>는 서부극이고 <니모를 찾아서>는 장난감 대신
열대어들이 등장하는 모험극. 이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동화’의 전형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장르 확산과 기술적 혁신을 이용하여 ‘애니메이션
제국’의 야망을 확고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고보니 올해가 디즈니 제국을 건설한 월트 디즈니의 탄생 100주년이다. <증기선 윌리>로 시작된 디즈니의 신화는 세기를 넘어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동안 주로 한 우물을 파왔으니 당연하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확고부동한 1인자 디즈니도 한때 몰락 일변도였던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 손을 떼고 TV 프로그램이나 테마 파크 등의 딴짓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 <인어 공주>의 돌연한 성공이 아니었다면, 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아성도 얼마간은 흔들렸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워너나 20세기폭스도 좀더 편안하게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다. 드림웍스와의
라이벌 경쟁이 벌어졌을 수도 있고. 하지만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디즈니는 <인어공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를 열었고, 애니메이션은
비디오와 머천다이징 사업으로 극장 개봉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황금시장으로 변했다.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중흥을 이끌었던 제프리 카첸버그가 새롭게 건설한 드림웍스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개미> <이집트 왕자> 등에
이어 지난해 말 개봉한 아드만 프로덕션의 <치킨 런>은 애니메이션 시장이 디즈니의 독점시장이 될 수 없음을 증명했다. 물론 디즈니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실사영화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아틀란티스>만 해도 4년 반의 제작기간이 소요됐다. 전체적인 방향을
바꾸겠다고 결심을 해도 결과물이 드러나는 것은 최소한 3, 4년 뒤다. 이번에 디즈니가 향후 3년간의 애니메이션 라인업을 발표한 것은 명백한
자신감이다. 이젠 포기한 20세기폭스와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시장 진입으로 촉발된 디즈니의 위기감과 자신감이 빚어낸 3, 4년 전의 ‘환영’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최근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그 완성도와 관계없이, 좌충우돌해온 감이 있다. 디즈니는 <포카혼타스>의 실패에 아연했다. <포카혼타스>는 디즈니에서
최고라고 평가했던 <알라딘>의 제작팀이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과물에도 만족했다. 현 디즈니의 사장이고, 당시 애니메이션 부문의 책임을
맡고 있었던 피터 슈나이더는 ‘<포카혼타스>는 너무 앞선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헤라클레스>와 <노틀담의 꼽추>는 디즈니 스타일을
답습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그때 디즈니를 구원한 작품이 바로 <뮬란>이었다. <뮬란>은 우연한 성공작이었다. 플로리다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들면서 감독과 스탭 대부분을 신진급으로 구성했고, 본사에서도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동양의 옛 이야기를 재구성한 소재도 ‘세계적’이 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기대주가 아니었던 탓에 간섭도 없었고, 그 자유 덕에 <뮬란>은 걸작이 되었다. 뮤지컬 스타일이 아닌 애니메이션도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해에 개봉한 <쿠스코? 쿠스코!> 역시 처음에는 장엄한 뮤지컬로 구상했다. 하지만 제작과정에서 <쿠스코? 쿠스코!>는 뮤지컬이 아니라 성인용
시트콤 스타일로 변화했다. 올 여름 개봉되는 <아틀란티스>도 뮤지컬이 아니다. 노래는 결정적인 순간에서만 흘러나오고, 그것도 등장인물이 직접
부르지 않고 배경으로만 깔린다. 이처럼 <인어공주>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뮤지컬은 이제 군무를 추는 ‘하나’가 되었다.
디즈니는 <포카혼타스> 뒤 연속된 실패와 드림웍스의 도전에 맞서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가려 했고, 그 결과가 막 드러나는 중이다. 극사실주의적인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법을 보여준 <다이너소어>나 못된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트콤 <쿠스코? 쿠스코!> 등 최근 개봉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완만한
능선 위에 놓여 있는 작품이었다. 지난 2월16일 미국에서 개봉된 <리세스>도 기존 디즈니 스타일과는 다르다. 97년부터 TV 시리즈로 방영되었던
<리세스>는 디즈니 스타일의 귀여운 주인공이 아니라 니켈던의 인기 애니메이션 <러그래츠>처럼 사실적인 악동들의 일상과 사건이 등장하는 코믹드라마이다.
<뉴욕타임스>는 “별로 새로울 게 없는 디즈니의 전형적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린이다운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점”은 봐줄 만하다고 평했다.
주인공도, 장르도 바꾼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늘 ‘귀감이 되는’ 주인공들이 등장해왔지만, 앞으로는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리세스>의 ‘어린이다운 어린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그동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다. 악동이라 해봐야 기껏 도널드 덕 정도. 그게 <뮬란>의 용이나 <쿠스코?
쿠스코!>의 쿠스코 같은 인물에서 조금 바뀐 것이다. 워너 애니메이션의 벅스 바니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지만, 어쨌거나 변화는 변화다. 그러나
<릴로와 스티치>의 스티치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년 여름에 개봉할 <릴로와 스티치>는 하와이에 사는 소녀 릴로와 외계인 스티치의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스티치라는 외계인은, 정말 끝내주는 악동이다. 의 선한 외계인 같은 걸 생각하면 큰코 다친다. 에일리언처럼
끔찍하지는 않지만 외계인 스티치는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엄청나게 힘도 세다. 특출한 능력으로 선한 일을 하기보다는 온갖 말썽이란 말썽은 다
저지른다.
한 장면에서 스티치는 범죄를 저질러 감옥으로 수감되다가 자동추적장치를 역이용하여 멋지게 탈출한다. 우주 공간에서 추격전을 벌이다가 지구에 떨어진
스티치는 릴로를 만나게 된다. 처음 릴로를 만나는 장면 또한 가관이다. 트럭에 부딪혀 동물보호소로 오게 된 스티치는 추적자들을 피하기 위해
릴로의 가정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것도 벽에 붙은, 아이와 개가 포옹을 하고 있는 포스터를 보고 즉석에서 떠올린 생각이다. 네개의 팔 중에서
두개와 더듬이를 몸 안으로 밀어넣고는, 릴로를 보자마자 달려가 품에 척 안긴다. 그걸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약간 괴상하게 생긴 스티치의 모습에
언니는 꺼려하지만, 온갖 아양을 떠는 스티치는 추적자의 눈앞에서 무사히 릴로와 함께 보호소를 나선다. 귀엽기는 하지만 그래도 악당이다.
디즈니는 늘 엇비슷해보이던 주인공의 형상도 개선하고 있다.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23세기로 옮긴 <보물 행성>에서는 한쪽 다리가 의족인 악당
존 실버가 익살스러운 사이보그 주방장으로 나온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미 론 실버의 복권이 이루어졌지만, 원작의 실버는 잔인무도한 악당이었다.
게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사이보그’가 등장하기도 처음이다. 사이보그가 처음이라는 것은, SF가 디즈니와 소원했다는 말도 된다. 폭스가
두 번째 애니메이션을 <타이탄 A.E.>로 결정한 것은 디즈니의 취약점을 파고들겠다는 의도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미국의 일반 대중에게 점차
파고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 하나는, 디즈니나 워너의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소재와 주제 그리고 영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본 SF와 판타지의 옷을 입고 날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강 장르는 단연 SF와 판타지물이다. 허무맹랑한 개그물도 독창적이긴 하지만, 그것도 판타지나 SF와
연결되어 있을 때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천지무용>이나 <엘 하자드>처럼. 90년대 중반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특기만을
일관해왔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바뀌었다. 앞으로 3년간 <아틀란티스> <릴로와 스티치> <보물 행성> 등 SF 스타일을 차용한 작품이 세편이나
연달아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절반 정도 발만 걸친 상태다. <아틀란티스>는 <해저 2만리>, <보물 행성>은 <보물섬>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 있다. <릴로와 스티치>도 악동을 외계의 말썽쟁이로 바꿔버린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틀란티스>에 등장하는 잠수함이나 굴착기
등의 메커닉 디자인, <보물 행성>의 사이보그 존 실버의 기기묘묘한 요리장면, <릴로와 스티치>의 우주 추격전 등을 보고 있으면 디즈니의 역량은
SF에서도 변함없이 돋보인다.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작가 별로 독특한 메커닉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디즈니 스타일의 SF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가 SF에 손을 댄 것은, 분명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의 해외 배급권을 따낸 것처럼,
디즈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화에도 큰 관심이 있다. 미국 출판계에서 일본 만화의 번역판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직
주류의 중심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팬덤’을 중심으로 소수의 향유물이었던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주류로 부상했음은 확연한 사실이다.
굳이 따지자면 주류의 주변쯤이라고나 할까. 적어도 소수 마니아만의 컬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아틀란티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직접적인
영향까지 엿보인다. 엇비슷한 소재이긴 하지만 <아틀란티스>의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안노 히데아키의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가 바로 떠오른다.
예고편에 등장하는 아틀란티스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등장하는 검은 피부의 여인이나 하늘로 불기둥이 치솟는 장면 등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풍경을
보는 것 같다. 그것이 별다른 흠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 SF 애니메이션의 특기인 기발한 상상력과 역동감을 부드럽고 사실적인 디즈니 스타일과
결합시킨다면 흥미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라는 설렘도 든다. 적어도 <타이탄 A.E.>처럼 이야기의 파탄만 가져오지 않는다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기술력으로는 특이한 메커닉 디자인이나 사실적인 우주공간에서의 움직임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지붕 두 가족,픽사를 업고 도약하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2D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유자재로 쓰이고 있다. 군중장면이나 셀로 표현하기 힘든 장면들은, 디지털로 얼마든지 변용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벅스 라이프>로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신기원을
이룩한 픽사의 위력은 여전하다. 올 11월 공개될 <몬스터 주식회사>는 픽사의 네 번째 작품이다. <토이 스토리>가 그렇듯이 <몬스터 주식회사>도
고난도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옛 이야기에는 침대 밑이나 벽장 속에 살고 있는 괴물이 늘 등장한다. 그런데 그 괴물들이 회사를 이루고, 사람들과
비슷하게 자신들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어떨까. 왜 인간과 괴물들은 친해지지 못하는 것일까. 뛰어난 상상력은 픽사의 기술력으로 완벽하게 재현된다.
일반적으로 디지털로 만들어내기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의 피부, 그리고 머리카락이나 털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픽사는 장난감, 곤충처럼 반들반들한
표면을 가진 주인공들을 주로 그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 주식회사>의 주인공인 제임스는 설인처럼 털이 북실북실한 몬스터다. 제임스와 함께
몬스터 세계로 온 부는 인간의 어린아이다. 제임스를 보고 좋아하다가 무서운 표정을 짓자 바로 울상지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부의 표정은 <토이
스토리2>보다 월등하게 발전했다. 제임스의 수북한 털이 작은 바람에 일렁거리는 모습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고 있노라면,
더이상 디지털로 표현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더 나아가 ‘물’과 화려한 ‘열대어와 산호초’의 재현에 도전하고
있다.
픽사가 디즈니 라인업에 합류한 것은 분명한 시너지 효과가 있다. 엇비슷해보이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 사이에 분명한 강조점을 찍어준 것이다.
디즈니도 덩달아 애니메이션들마다 차별성을 부가하기 시작했다. <스웨팅 불리츠>처럼 전형적인 뮤지컬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피터팬>처럼 과거의
영광을 잇는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아틀란티스>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항마도 만들고, <릴로와 스티치>처럼 아주 독특한 디즈니 같으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애니메이션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이제 한 마디로 뭉뚱그리기는 어려워졌다. 보수적인 가족 중심의 가치관이나
해피엔딩, ‘귀여운’ 등장인물 등은 여전하지만 원거리의 풍경은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주인공의 성격, 장르, 표현방법 등을 조금씩 변주하면서
나름의 표정을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목적지는 물론 동일하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한, 더 다양한 분야에의 진출. 프리젠테이션이 끝나는가 했더니, 특별선물이 있다며 어디론가
데려간다. 문을 들어서니 거대한 스크린이 펼쳐진다. <미녀와 야수> 아이맥스판. 멀리서 야수의 성을 잡으며 다가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화면에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부터 아이맥스영화란 영화는 다 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이맥스영화가 다큐멘터리 스타일에서 이야기
구조를 갖추는 식으로 바뀌어가는 지금, 디즈니는 이미 발빠르게 아이맥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에 <판타지아 2000>을 아이맥스용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이맥스로 디즈니영화를 보기가 불가능할 것 같다. 지금 하나뿐인 63빌딩의 아이맥스 영화관은 ‘영화’를 보러 간다기보다는,
‘관광’용으로 주로 기능한다. 90분짜리 ‘영화’를 트는 것보다는 40, 50분 정도의 ‘볼거리’를 트는 게 당연한 경영논리다. 그러니 <판타지아
2000>이나 <미녀와 야수> 아이맥스판이 국내 아이맥스관에 걸리기를 기다리는 건 헛수고다). <미녀와 야수>를 아이맥스로 본다는 것은, <미녀와
야수>를 다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아이맥스영화 한편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만큼 <미녀와 야수> 아이맥스판은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다.
팍스 디즈니, 달콤 쌉싸름한 즐거움
요즘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은, 그냥 영화사가 아니라 거대한 미디어 기업이다. 디즈니도 미국 3대 방송사의 하나인 와
합병하고, 최근에는 야후까지도 욕심낸다는 소문이 있다. 그걸 문어발식 확장이라고도 부르지만, 혹은 시너지 효과를 위한 전략적인 제휴라고도 부른다.
결정짓는 건 오로지 성공 여부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 ‘확장’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행보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드림웍스의 잠재력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디즈니와 맞상대를 하기는 힘들다, 이때 확고하게 자리를 다져두자.’ 디즈니는 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경탄스럽고, 여전히
막강하다. 3년간 예정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출정자들은 자신의 무기를 탁월하게 다룰 줄 아는 글래디에이터들이다. 그 막강한 위력을 미리 엿보자니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다. 세기가 바뀌어서도 여전한 챔피언이라니. 어디 좀 화끈하고, 새로운 도전자 좀 없을까, 팍스 아메리카, 아니
팍스 디즈니를 뒤흔들 만한.
김봉석 기자 lotu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