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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 영화제 - <가을 소나타>
2001-03-26

<가을 소나타>

Hotsonaten/ Autumn Sonata

1977년, 출연 잉그리드 버그만, 리브 울만, 레나 니만

베리만의 세계에 속한 많은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재능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고통받으면서도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무능력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인 것이다. <가을 소나타>의 세 모녀 역시 마찬가지이다. 소원하게 지내오던 큰딸 에바와 어머니 샤를로테는 어떤 새로운 국면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7년 만에 재회하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증오해왔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고 황망히 헤어질 뿐이다.

베리만의 많은 영화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을 소나타>에서도 비명을 동반하는, 죽어가는 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묘사된다. 샤를로테와 에바가 서로의 증오심을 고백하는 그 시간에 <외침과 속삭임>의 아그네스처럼, 죽음을 기다리는 또다른 딸 헬레나는 침실 바닥에 뒹굴며 애타게 그들을 부른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그녀의 고통은 어쩌면 샤를로테와 에바의 화해를 위한, 일종의 대속(代贖) 경험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질없게도 고통은 계속되지만 끝내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황량한 실내극 <가을 소나타>는 베리만 만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영화이지만 베리만 자신은 그리 만족스러워하지 않던 영화였다고 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 영화는 자신의 영화가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베리만이 만든 (잉그리드) 버그만의 영화”라는 것이다. 실제로 암과 투병중이던 잉그리드 버그만은 샤를로테 캐릭터에 놀라울 정도로 활기넘치는 신경증의 이미지를 불어넣었다. 이 동적이고 외향적인, 따라서 베리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는 버그만의 연기가 너무나 강렬해서 베리만의 특별한 인장들이 다소 불명료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독한 염세주의자 베리만이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종종 극도의 불만감을 표하곤 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고통에 찬 과도한 자기비판에 우리마저도 현혹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