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아닌 다이애나 ‘스펜서’에 관한 이야기, 영국 왕가에 관한 서사시가 아닌 어느 불행했던 여성의 혼란한 심리 드라마다. <스펜서>는 영국 왕세자비이자 웨일스의 공주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가 1991년에 보낸 어느 크리스마스 휴가를 좇는다.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노퍽 해안의 왕가 저택인 샌드링엄 하우스에서 보낸 3일의 시간 안에 인물의 오랜 심적 고통을 집약해냈다. 명칭상 휴가지만 식사, 파티, 사냥 등으로 채워진 빽빽한 일정에 맞추어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의무를 다하는 생활이 마치 과장된 악몽처럼 묘사된다. 찰스 왕세자와의 갈등과 냉담한 왕가를 향한 반발심이 극에 달했던 이 시기, 다이애나의 섭식 장애와 공황 등의 병적 징후 역시 극심해진다. 재클린 케네디의 비극적인 순간을 그린 <재키>와 마찬가지로 인물의 혼란마저도 아름답고 풍요로운 이미지로 전달하는 파블로 라라인의 낭만적 스타일이 여과 없이 발휘된 작품. 조니 그린우드의 예민한 선율과 1990년대 상류 사회의 패션 등도 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