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크로싱’ 스릴러를 표방하는 <카이로스>는 두 주인공의 위기를 핸드폰을 매개로 한 시간차 비대면 공조로 풀어간다. 9월의 서진은 이미 일어난 일을 한달 전의 시간대에 사는 애리의 힘을 빌려 되돌리려 하고, 8월의 애리는 앞으로 닥칠 위기를 한달 후 시점의 서진을 통해 알게 된다.
한정된 지면을 줄거리에 할애하는 게 아까울 정도로 <카이로스>는 뜯어보고 싶은 장면이 넘친다. 한달 간격으로 같은 사건 현장에 도착한 두 주인공의 동선을 연결하는 연출이 얼마나 기가 막힌지.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정보량의 차이를 계산하고, 인물이 프레임 안팎으로 들고 날 때의 압박과 쾌감을 컨트롤하는 연출이 스릴러 장르를 다루면 이렇게 짜릿하다고 외치고 싶다. 여기에 배경음악이라 하면 죄송할 정도로 각 신의 호흡과 컷의 리듬을 틀어쥔 스코어가 긴장을 쥐락펴락하고, 매회 화면을 꽉 채우는 오프닝 타이틀 위에 얹힌 효과음은 시청하는 쪽의 감각을 한껏 고양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현채가 서진이 먹지 않은 죽 그릇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닫힌 문밖으로 변기에 죽이 후두둑 떨어지는 질척한 소리가 울리고 그 위를 ‘카이로스’ 타이틀이 뒤덮은 후, 변기 물을 내리는 소리가 이어지는데, 내 생전 죽 버리고 물 내리는 효과음에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기분을 느낄 줄은 몰랐다. <카이로스>는 보고, 들어야 진가를 알 수 있는 드라마다.
VIEWPOINT
배우의 디테일
<카이로스>의 한애리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사라진 엄마와 수술비를 찾아야 하며, 여기에 김서진을 찾아가 딸의 유괴를 경고하는 등 할 일도 많고 보여줘야 하는 감정의 폭도 큰 역할이다. 배우 이세영에게 반하게 된 순간은 사소한 디테일 때문이었다. 편의점 파라솔 테이블 정리를 하던 중에 손님이 버리고 간 팩 음료를 가볍게 흔들어보고 쓰레기통에 넣는 장면. 손동작 없이 그냥 버렸어도 무리가 없을 테지만, 한애리라는 사람은 음료가 남았으면 그걸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는 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이겠구나 싶어서 감탄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