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설국열차>가 재미있었다면 브누아 페테르스가 쓰고 프랑수아 스퀴텐이 그린 <어둠의 도시들> 시리즈를 읽어보자. 총 16권 중에서 <기울어진 아이> <우르비캉드의 광기> <보이지 않는 국경선> <한 남자의 그림자> 등이 나와 있다. <어둠의 도시들>은 ‘반지구’(counter-Earth)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태양을 사이에 두고 지구와 똑같은 행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SF소설에서는 ‘반지구’ 이론을 바탕으로 지구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사회구조를 지닌 세계를 많이 그려왔다.
<어둠의 도시들>은 반지구 행성에 존재하는 수많은 도시국가들의 이야기다. 수학, 식물학, 의학, 점성술, 천문학 등의 학문이 발달된 반지구는 지구의 중세가 그대로 진화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수수께끼와 비밀들이 존중되며, 해답보다는 질문이 언제나 환영받는’ 모호한 도시들에서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며 진행되는 이야기들이다. 각권은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느슨하게 인물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어둠의 도시들>에서는 ‘건축’이 가장 중요한 예술로 대우받는다. 각각의 도시들은 19세기 브뤼셀의 아르누보 건축부터 20세기 초반 뉴욕의 마천루 풍경까지 제각각의 고유한 풍경을 지니고 있고, 사건들은 공간과 건축을 중심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건축가 집안에서 태어난 프랑수아 스퀴텐의 세밀한 그림은 실제 건물보다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묘사된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조각가, 고고학자, 건축가인 지오바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벨기에의 아르누보 건축가 빅토르 오르타, 18세기 프랑스 건축가인 클로드 니콜라 르두 등의 영향도 엿보인다. 그러니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어둠의 도시들>은 반드시 봐야 할 만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