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브 디아즈 | 필리핀 | 2013년 | 250분 | 아시아영화의 창 OCT10 롯데2 19:00 OCT11 롯데2 16:00
파비앙은 법을 공부하던 대학생이었지만 그만두었다. 카페에 앉아 자신의 지식인 친구들을 상대로 탁상공론이나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눈에 들어온 것이 저 악랄하고 추잡한 고리대금업자 노파다. 다소 몽상적이고 과격한 파비앙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바로 노파를 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파를 살해하러 갔던 파비앙은 노파의 죄 없는 딸까지 살해하고 만다.
여기까지는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를 통해 우리도 이미 여러 차례 여러 버전으로 접한 이야기다. 다름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하지만 라브 디아즈는 원전을 느슨하게 각색한다. 아니 원전에 바탕하되 다른 정황으로 나아간다. 파비앙이 저지른 죄를 호아킨이라는 하층민이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고 그의 아내 엘리자가 힘겨운 삶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초점을 맞춰간다. 감옥에 간 호아킨은 성자가 되어가고 엘리자는 쓰러지지 않으며 파비앙은 고통스러워한다. 이 세 인물에 관한 4시간 동안의 느리고 길고 깊은 이야기를 통해 라브 디아즈는 죄와 벌과 구원에 관한 심대한 성찰을 전하고 있다. 라브 디아즈는 여전히 우리시대의 영화 ‘성자’다.
TIP 지난해 부산영화제 상영작이었던, 카자흐스탄의 거장 다레잔 오미르바예프의 <스튜던트>와 비교해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