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에스피아 | 필리핀 | 2013년 | 92분 | 뉴 커런츠 OCT9 롯데3 19:00
해마다 이스라엘에서는 5살 미만의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강제 추방되고 있다. <경유>는 이 법이 이스라엘에서 살아가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화로 풀어낸 작품이다. 아직 5살이 채 되지 않은 아들 조슈아를 키우는 모세, 이스라엘에 살고 있지만 필리핀 출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자넷, 이스라엘-필리핀 혼혈로 자신이 이스라엘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자넷의 딸 야엘 등의 사연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된다.
영화는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사람들에게도 각기 다른 삶의 결이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그들의 삶이 온전히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말한다. ‘경유’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삶의 어떤 지점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거나 영향을 주고받는다. <경유>에선 누군가에게 보인 선의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 영화는 그렇게 누구나 경험하는 삶의 질곡을 담담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이전 시퀀스의 어느 대목을 이후의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되, 그 장면의 컷과 컷 사이로 새로운 이야기의 갈래들이 비집고 나오는 연출 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상업영화로도 사랑받을 법한 극적인 이야기와 구성을 취한 작품.
TIP <경유>는 한나 에스피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첫 장편임에도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