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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꿈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풍경> 감독 장률

거리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유심히 바라본 적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다. 장률 감독의 첫 다큐멘터리 <풍경>은 서울의 구로동, 가리봉동, 신림동, 경기도 안산 등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연을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가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딱 하나. 당신이 한국에 와서 가장 인상적으로 꾼 꿈은 무엇인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이들의 사연을 따라가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풍경>은 당신의 첫 다큐멘터리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1995년 처음 한국에 왔다. 이후 여러 차례 한국과 중국을 오갔다. 그때 한국, 특히 서울의 거리에서 본 외국인은 대부분 관광객이었다. 관광객은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다가 2000년 이후 한국의 거리에서 외국인이 많이 보이더라. 그들은 관광객이 아니었다. 옷이나 생김새를 보니 고달픈 노동자들 같았다. 가리봉동이나 안산 같은 곳에 가면 거리에 외국인이 한국인보다 더 많다. 이건 무엇일까 궁금했다. 나 역시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연세대 강의 때문에 1년 가까이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들 같은 노동자는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나도 이곳에서 이방인이라 볼 수 있고. 그래서 그들을 더욱 유심히 보게 되더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명씩 등장해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는데 모두 한국에서 꾼 꿈 이야기다. 왜 그들에게 꿈을 물었나.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진짜 사람과 현장을 부딪치는데, 성격상 함부로 그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을 못하겠더라. 그들이 아주 불쾌해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마법처럼 수월하게 풀 수 있을까. 살다보면 사람들은 모든 일에 다 평등하지 않다. 하지만 유일하게 평등한 건 꿈이다. 남자든 여자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 평등하게 꿈을 꾸니까. 고향에서 꾼 꿈과 타향에서 꾼 꿈은 완전히 다르고. 꿈속에 현실이 또 반영되기도 한다. 그것을 물어보면 어떨까. 외국인들이 일하는 공장에 찾아가 그들에게 말했다. 질문은 하나밖에 없다. 한국에 와서 꾼 꿈 중 가장 인상 깊은 꿈은 무엇인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하하하 웃으면서 찍으라고 하더라. 그들이 꾸는 꿈속의 풍경이 궁금했고, 나도 그들의 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고국에 있는 아내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제주도에 놀러가는 꿈을 꿨다는 사연이 기억에 남는다. 꿈속의 제주도에서 귤나무, 포도나무를 봤다는 얘기를 하는데 바로 이어지는 인서트 컷이 제주도의 겨울 풍경이더라. =그 사람을 찍을 때 겨울이었다. 그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얘기했지만 겨울 제주도는 쓸쓸한 바다뿐이다. 사람의 꿈과 현재의 풍경은 어떤 관계인가. 그 차이는 크다.

-공장에서 일하든, 사무실에서 일하든 카메라는 그들의 뒷모습부터 보여준다. =잘 아는 사람은 얼굴을 쳐다봐도 된다. 하지만 잘 모르거나 조심스러워야 하는 사람은 얼굴을 쳐다보는 게 불편하다. 특히 카메라. 카메라는 눈과 같다. 그래서 카메라는 조심스럽게 감정을 따라가며 찍어야 하는데 막 들이대는 카메라가 많은 것 같다. 뒷모습부터 찍은 건 카메라의 본능이었다. 뒷모습도 감정이 있다.

-그들을 만나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나. =그들을 찍기로 마음을 먹은 것도 한국의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인 그들이 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풍경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나. 영화를 찍다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영화를 찍고 있는 것과 현실의 경계가 없어질 때인데, 이번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어느 정도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수 있구나. 극영화를 찍을 때보다 훨씬 희망적이었다.

-차기작은 얼마 전 촬영을 끝낸 <경주>다. =<풍경>을 찍으면서 스탭들에게 그랬다. 다시는 다큐멘터리를 찍지 않겠다고. 너무 힘드니까. <경주>를 며칠 찍으니까 극영화를 포기해야 할 것 같아.(웃음) 사람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천년고도 경주는 아름다웠다. <경주>를 찍으면서 계속 다짐한 건 천년고도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아름다워야겠다는 것이다. <풍경>은 12월초 극장 개봉한다. 극장에서 봐야 그 풍경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