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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CHOICE] <순천> Splendid but Sad Days
송경원 2013-10-08

이홍기 | 한국 | 2013년 | 64분 | 와이드 앵글 OCT08 CGV4 13:00

늙은 어부가 있다.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순천>은 졸릴 만큼 평화로운 순천만의 풍광을 뒤로 평생 거친 바다 위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는다. 마을사람들이 입 모아 여장부라 칭찬해 마지않는 그녀 곁에는 오십 평생 알코올 중독자로 속을 썩인 할아버지가 있다. 할머니는 “평생 나를 고생시켰다”며 투덜거리면서도 살뜰하게 할아버지를 챙긴다.

그녀의 태도에 푸념은 있어도 원망은 없다. 다만 삶의 주름 사이에 고여 있는 피로와 슬픔만은 어쩔 수 없나보다. 술 때문에 망가지고 지친 몸을 빠끔히 내밀어 그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에도 미안함, 답답함, 섭섭함이 뒤섞여 있다. 그럼에도 회한은 없는 삶의 풍경, 그리고 넉넉한 순천의 풍경. 멀리서 보면 그저 아름다운 풍광에 불과할 테지만 가까이 들여다 보면 고단한 순천만 어부의 삶과 겹쳐지며 잔잔하고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당당한 빛을 잃지 않고 한 순간 넋두리는 있어도 후회는 없는 그녀의 모습에서 순천(順天)의 의미 그대로 하늘을 거스르지 않는 삶, 바다를 따르며 사는 인생의 도리를 마주한다. 늙어 굽어가는 허리 뒤로 순천만의 풍광이 녹아든다.

TIP 스스로 순천 앞바다의 풍경이 되는 할머니의 뒷모습과 여걸이라 불릴 만한 걸쭉한 입담의 조화가 묘하게 가슴 속을 후련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