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게 고른 단어가 느리고 차분한 말투에 실려 이목을 휘어잡는다. 천천히 또박또박. 이미 알고 있지만 진즉에 말라버린 단어들, 이를테면 소통, 평화, 존중, 이해 같은 고리타분한 말들이 그의 입을 거치는 순간 생기를 되찾는다. 아시아프로젝트마켓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을 방문한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영화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역설했다. “영화는 세상을 관찰하는 방식을 바꾸고,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바꾸고,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이 그간 걸어온 발자취가 그의 말에 현실의 무게감을 실어준다. 고국 이란에 돌아가지 못한 지 벌써 8년째인 그는 이란 바깥에서 여전히 영화를 통해 부조리에 항거하는 법을 설파하고 있다.
그가 준비 중인 신작 <프레지던트>(가제)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 선상에 있는 영화다. “중동의 정치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독재정권과 싸우는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전 세계에 40여개가 넘는 독재정권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정부와 저항군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아랍 각국의 봉기는 결국 내전으로 번졌고 사람들 사이에 폭력을 퍼트렸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어떻게 독재와 싸워나가야 하는지를 물으려 한다.” 순수한 영혼으로 빛나는 영화의 스승이 믿는 것은 결국 영화의 힘이었다. “영화는 사람들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로 다른 나라와 문화를 소개하고 나누는 영화제야말로 세계평화를 지키는 행사다.”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좋은 세상 만들기’는 계속 된다. 진정 계속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