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기자로 <씨네21>에 합류한 첫 해인 2008년. 운이 좋게도 선배 기자들과 함께 그해 부산국제영화제 데일리를 만들 수 있었다. <씨네21> 데일리팀은 영화제가 개막하기 전에 미리 많은 영화를 보고 부산으로 내려가는데, 그해 본 영화 중 필리핀 출신의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이 만든 <서비스>가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다양한 개성을 가진 필리핀영화가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필리핀 사회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리얼리즘 계통의 영화가 많았다. 솔직히 참 지루했다. 하지만 <서비스>는 필리핀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깨준 영화였다. 마닐라 시내에 있는 도산 직전의 낡은 성인영화 동시상영관을 배경으로 극장 주인을 비롯한 그의 가족, 극장 직원, 관객 등 여러 인물들의 사연과 그들이 벌이는 소동을 그린 작품이다. 극장이라는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여러 인물의 사연을 차곡차곡 쌓은 뒤 그게 하나의 서사로 발전하는데, 그게 전형적인 장르영화의 서사 전개를 따르지 않아 무척 재미있게 이야기를 따라간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든 브리얀테 멘도사 감독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객원기자였던 내게 그 같은 ‘핫’한 감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질리가 없었다. 아쉬움만 안고 있다가 지난해 취재차 찾은 필리핀 다바오에서 자신의 신작 <자궁>을 첫 공개한 브리얀테 멘도사를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만난 그는 무척 친절했다. <자궁> 뿐만 아니라 찍은 지 오래된 <서비스>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상세하게 대답해주었다. 그와 1시간 남짓 대화를 나눈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서비스>를 낡고 쾌쾌한 냄새가 나는 동시상영관에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