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나고 자란 덕분인지 해마다 찾는 영화제는 고향에 방문하는 기분이다. 익숙하지만 조금씩 변하는 동네 풍경처럼 남포동에서 해운대,지금의 영화의 전당까지 영화제가 장소를 옮길 때마다 부산영화제의 풍경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바뀌었다. 그때마다 왠지 이사하는 기분이 드는 건 내게 부산영화제가 어떤 영화를 보느냐 보다 어디서 보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부산영화제 하면 떠오르는 공간은 수영만 요트경기장이다. 요트경기장 야외상영작 관람은 이제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었음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의식이었다. 야외 상영을 처음 보러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단박에 구별할 수 있는데 10월임에도 바닷가라 제법 쌀쌀하기 때문에 가볍게 왔다간 고생하기 십상이다. 준비해온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추위에 떠는 초짜들을 바라보는 쾌감이란!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운 추억이 될 것을 알기에 선배의 마음으로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야외상영작은 영화제 작품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영화를 틀어주곤 하는데 요트경기장에서 보는 순간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2009년 <이겨라 승리호>를 잊을 수 없다. 1970년대 TV인기 만화를 미이케 다케시 감독이 영화화한 이 작품은 일본영화 특유의 ‘병맛’과 ‘오글거림’이 가득한 영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야외상영관에서는 모두의 환호를 받는 인기영화가 된다. 왠지 평소엔 좋아한다 말하기 어려웠던 은밀한 ‘오덕’ 취향을 공식적으로 허락받는 기분이랄까. 찬바람을 쐬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만큼 재미있는 관객들의 반응, 웃음, 눈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축제의 한복판에서 즐기는 ‘몸으로 영화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