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낳자마자 병원에서 서로 바뀌어 버린 두 아이를 각자의 친자라 여기고 키운 두 부모가, 아이가 6살 때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다시 교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감독은 이 사건을 담담하고도 성찰적으로 다루며 보편성까지 끌어안는다. 그 때문일 거다. 이 영화는 9월28일 일본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칸영화제에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하여 영화를 보고 반한 스티븐 스필버그는 드림웍스의 이름으로 리메이크 판권도 구입했다. 일본일도, 서양인도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된 거다.
-당신은 아내와 딸의 친한 관계를 보면서 ‘나를 진정한 아버지로 만드는 건 무얼까’하는 자문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게 이 영화의 시작이라고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아내가 갑자기 변하더라. 엄마가 된 거다. 그런 모습과 비교해 보니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빠가 된 게 맞는건가, 아니라면 나는 언제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인가. 그럼 아빠라는 확신을 줄 수 있는 건 핏줄 이외에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 거다.
-그 질문이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는 실화를 거쳐 영화화 됐는데. =일본의 1960~70년대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이런 일이 많이 발생했다. 이전과 다르게 병원에서 아이를 낳기 시작하는 시기였는데 관리가 철저하지 않았던 거다. 당시에 아이가 바뀐 사례가 뉴스화 된 것만도 30여번이다. 사건의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보진 않았지만 신문이나 재판을 많이 참고했다.
-어떤 특별한 내용들이 있었나.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서로 아이를 교환한 뒤에 한쪽 집안이 완전히 망한 거다. 그래서 원래 살던 집으로 아이가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그러자 나머지 한 가족이 그 망한 가족 근처로 이사를 와서는 아이가 양쪽 집을 오갈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이들을 모델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의 가난하지만 다정한 아버지는 당신의 친구를 모델로 한 것이다. 그와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또 있나. =공간에 관한 게 한 가지 있다. ‘나가토로’라는 곳이다. 내 친구들은 어린 시절 부모와 나가토로에 캠핑을 가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집이 아니어서 친구들이 거기 다녀왔다고 하면 늘 부러워했다. 나한테는 다소 씁쓸한 기억이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궁금해지는데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 전에 돌아가셨다. 가정적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연을 날리지도 않았고. 그런데 며칠 전에 딸이 나하고 연을 날리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만 “저런 건 남자 애들이나 하는 거야”하고 말해버렸다. 내가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웃음) 내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많았는데 그럼에도나 역시 아이를 대하는 방법에서는 아버지를 닮아버린 것이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런 식으로 최근 들어 아버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많아진 것 같다.
-<걸어도 걸어도>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관계가 있어 보인다. =두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같다. 두 영화 사이에 만든 드라마 <고잉 마이 홈>의 주인공 이름도 같고. 3편 모두 ‘료타’다. 내 생활의 경험이 다수 들어갔다. 그 세 작품은 나로서는 관계가 좀 있다고 본다.
-<고잉 마이 홈>의 아베 히로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후쿠야마 마사하루. 각각 다른 아버지상을 기대한 것 같은데. =두 역할 모두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같을 거다.(웃음) 아베 히로시가 맡은 역할은 좀 유연하고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완고하다. 실제로 아베 히로시의 경우는 여자들의 기가 센 집에서 자랐고 나도 그랬다.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반대였고. 본인들의 상황이 좀 반영된 걸 거다.
-그렇다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릴리 프랭키가 맡은 자상한 아버지가 가장 이상적인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아버지가 아이에게 잘해주기는 하지만, 아이가 중학생쯤 되었을 때 우리 아빠는 왜 일을 안 하고 놀기만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할수도 있으니까 말이다.(웃음)
-2000년대 이후, 딸의 탄생,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당신의 실생활의 경험이 영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 같다. =(한참 생각)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아무도 모른다> 때에는 어머니가 살아 계셨고 딸이 태어나기 전이라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걸어도 걸어도>는 아들의 관점에서 어머니를 본 거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이가 태어나자 이제 나는 부모의 관점에서 아이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