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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나의 영화] 우중영화(雨中映畵)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 어 둠 속의 댄서>

경기장에서 축구를 관람하며 비를 맞는 건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라 특별할 것도 없다. 축구는 보는 것보다 하는 걸 좋아하(지만 지금은 여기저기 성치 않은 데가 많아서 꿈도 못꾸)고 야구는 하는 것보다 보는 걸 좋아하지만 게을러서 경기장에 잘 가지 못하는 나는 비를 맞으며 축구를 해본 적은 있는데 비를 맞아가며 야구를 본 경험이 많지 않다. 축구는 그렇지 않지만, 야구는 비가 너무 많이 오면 경기 자체가 중단된다. 이것이 나의 일종의 ‘무쓸모’ 엉터리 가설 중 하나인데 축구 관람자보다 야구 관람자가 ‘비교적(!)’ 얌전한 이유 중 하나는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경기를 본 적이 없어서라는 것이다. 우산을 들었건, 우비를 입었건, 거세게 몸에 달려드는 빗줄기는 이성을 좀 잃게 한다.

주로 극장이라는 장소 안에 있는 영화관객은 일반적으로 관람의 조건에서 축구보다는 야구관객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1999년이었는지 2000년이었는지 2001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그 억센 빗줄기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아마도 수영만 어디쯤이었을 텐데,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를 볼 때의 일이었다. 아들의 병을 낫게 하고 싶었지만 정작 살인자가 되어 사형대로 향해야만 하는 한 가난한 어머니의 이 격렬한 이야기가 뮤지컬로 펼쳐지고 있었는데, 주인공을 맡은 가수 뷰욕의 소름끼치는 노랫소리에 쏟아지는 빗줄기에, 처음에는 불편해 죽겠더니 나중에는 기이한 흥분감이 느껴졌다. 이 특별한 ‘우중관람’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다시 찾아 본 적은 없지만, <어둠속의 댄서>가 가끔씩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