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 섹션에서 <문유랑가보>를 선보였던 한국계 미국인 감독 정이삭이 5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올해 월드 시네마 섹션에 그의 세 번째 장편 <아비가일>이 초청됐기 때문이다.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은 사랑을 통해 외롭고 고독한 현실을 초월하는 이야기다.
<아비가일>은 만만치 않은 영화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기보단 몽환적인 느낌이나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월드 시네마 섹션에서 가장 독특하지만 난해한 작품으로 꼽을 정도다. 정이삭 감독은 “<아비가일>은 사실 영화를 그만 두고 싶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촬영을 마치고서 편집을 하는데 너무나도 애를 먹었다. 작품을 끝낸 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마음을 겨우 추슬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극중 아비가일로 등장한 아만다 플러머와의 작업은 그에겐 뜻 깊은 경험 중 하나인 게 분명했다. “아만다 플러머는 굉장한 시네필이다. 내 작품을 본 그녀가 같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다. 그래서 어떤 영화가 좋겠냐고 물으니 젊은 남자와의 사랑이야기가 좋다고 하더라.” (웃음) 차기작을 준비하는 정이삭 감독은 <아비가일>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아비가일>은 분위기나 느낌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며 찍었다면 차기작은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는 직설적인 영화가 될 것 같다.” 극중 아비가일에게는 사랑이 그리고 정이삭 감독에게는 <아비가일>이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