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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사람] 세상을 기억하게 하는 아름다움

에드워드 양 감독

부디 내 영화를 잊지 마시오.

2004년 부산 데일리 사무실. 해운대 스폰지 건물 3층이나 4층쯤에 있었던 폐업한 우동집 안에서 녹슨 싱크대를 눈앞에 두고 기사를 쓰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인접한 오락실에서 하루 종일 흘러나오는 “동전을 넣으세요!” 같은 무한 반복 소음은 데일리 팀원들 전부를 신경쇠약 일보 직전으로 몰아넣었다. 화장실에 앉아 이렇게 배가 아픈 것도 다 저 오락실 탓이라고 투덜거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하여간에 그때 누군가의 전화를 받았다. 공식 초청명단에는 없었으나 비즈니스 건으로 방문한 이 사람을, 그러니까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이 사람을 인터뷰 할 기회가 생겼다, 단 지금 당장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게 내용이었다. 에드워드 양을 만나기 위해 화장실을 뛰쳐나왔다.

근사한 문답이 오갔을 리 없다. 몰려가면 나을 거라고 믿고 남동철 전 <씨네21> 편집장, 김혜리 기자와 함께 갔지만 대화는 겉돌았다. 나는 지금도 우리가 현명한 질문을 한 바 없고 에드워드 양이 무언가 비밀스런 대답을 준 적 없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던 우리는 그 허술한 인터뷰 자리를 두고 각자의 방식대로 한 차례씩 실없는 농담을 건넸던 것 같다. 그런데 난 그 순간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에드워드 양이 돌연 세상을 떠난 건 그 뒤 3년밖에 지나지 않아서다. 에드워드 양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가 해준 말이 아니라 그날 우리가 걸어 나온 걸음의 속도나 서로 조금 민망해하던 표정이나 우중충했던 날씨가 생각난다. 조금 좋았던 느낌으로. 그러니까 나는 지금 에드워드 양에 대해 쓴 게 아니라 에드워드 양이 심어준 이 세상에 대한 나의 기억에 대해 쓴 것 같고, 특별히 아름다운 기억이 아니라 세상을 기억하게 되는 특별한 아름다움에 관하여 말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게 바로 떠나간 에드워드 양이 남긴 영화들의 아름다움일 거라고 종종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