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시마키에서 20km 떨어진 산골에서 태어났습니다. 농부의 아들이었고 농업고등학교를 다녔죠. 그런데 다른 사람의 과수원에서 배를 훔친 것과 싸움을 했던 것 때문에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가출할 계획을 세웠어요. 저랑 친구는 야행열차를 타고 도쿄로 향했습니다. 우에노 역에 도착했는데 친구와 제 얼굴이 시커멓더라고요. (웃음) 그때의 열차는 석탄을 사용했거든요. 저는 일본 전통과자 가게에 취직했습니다. 기름에 튀긴 과자에 양념을 묻히는 건데 거기서 화상을 입었어요. 더군다나 과자점에서 누군가 사고로 죽었는데도 과자점은 피해보상을 하지 않았죠. 정말 화가 나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 신주쿠의 야쿠자가 됐습니다. 나중엔 제 부하도 생겼는데 부하가 반대파 야쿠자에게 습격을 받았죠. 전 제 부하를 다치게 한 놈을 찾아가서 린치를 가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도 야쿠자인 주제에 경찰에 저를 고소했어요. (웃음) 결국 저는 6개월 동안 형무소에 있었어요. 제가 워낙 반항적으로 굴었더니 교도관이 화장실도 못 가게 해서 너무 힘들었죠. 교도관을 다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도저히 교도관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복수의 방법으로 소설가나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학교를 안 다녀서 원고지 열장만 써도 힘들더군요. 그래서 야쿠자로 활동 했을 때 알던 프로듀서에게 찾아가 농성을 벌여 영화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송계나 영화계나 정말 멍청하더군요. 윗사람의 말이라면 모두 “네”를 외쳤으니까요. 사회와 방송, 영화의 더러운 세계에 열이 받아있던 찰나에 누군가 제게 감독 제안을 하더라고요. 나는 제대로 영화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한번 해봐라” 해서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했어요. 프로듀서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고 해서 경찰을 죽이는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제 분한 마음을 다 담았죠. (웃음) 그 작품을 개봉했는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관객들이 경찰에 불만이나 원한이 많았던 거지요. (웃음) 흥행이 되니 또 찍자는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한 건 하는 영화마다 흥행에 성공했어요. 그래서 슬슬 내가 정말 찍고 싶은 영화를 해야겠더군요. 그런데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영화를 만들다보니 일본정부로부터 “굴욕이다, 일본의 수치다”라는 소릴 들었어요. 한번은 평론가랑 TV 프로그램에서 싸운 적이 있는데요. 저를 가지고 ‘진흙탕’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저는 “연꽃도 진흙탕에서 피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발했어요. 그 싸움을 계기로 프로덕션을 만들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제 분노를 담아서 영화를 만들었죠.
늘 하는 얘기지만 한번 마음을 먹으면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가세요. 홀로 실천하세요. 이건 제 수첩에도 적어놨어요. 그리고 떼를 짓지 마세요. 떼를 지으면 권력관계가 생기니까요.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해결하세요. 어디든 흔들리지 말고 칭찬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이것들을 저는 항상 신조로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해서 영화를 찍고 찍었어요. 저는 스승도 없고 영화에 대한 공부도 없이 독학으로 100편을 넘는 영화를 찍었어요. 영화는 누구나 찍을 수 있습니다. 이걸 찍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