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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인간의 조건, 영화의 사유

‘ 폴란드 인 클로즈업: 폴란드의 거장들 ’ 특별전 어떻게 볼까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맹목적인 기회>(1981년)는 사소한 우연으로 인해 전혀 다른 세 가지 인생을 살게 된 의대생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바르샤바행 열차를 타느냐 놓치느냐에 따라서 공산당원이 되기도, 반체제 인사가 되기도 하며, 마지막 버전에서는 정치와는 무관한 의사의 삶을 산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 갈래 길은 모두 철저한 실패로 끝이 난다. 어떠한 경로를 가더라도 결국 교착상태에 놓일 것이라는 회의적인 현실인식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맹목적인 기회>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운명에 천착했던 감독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알레고리적 독해가 비교적 용이한 영화에 속한다. 주인공이 느끼는 무력감이 1980년대 초 폴란드의 불안한 정치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 영화계의 혁신 폴란드 영화, 적어도 이번 ‘폴란드 인 클로즈업: 폴란드의 거장들’ 특별전을 통해서 소개될 영화들에는 일종의 시대적 ‘우수’가 관통하고 있다. 전쟁과 학살로 점철된 20세기 역사에서 정치적 변곡점을 거치지 않은 나라는 아마도 드물 것이다. 그 중에서도 폴란드는 주변 강대국의 야욕에 거듭 희생당하고, 공산주의 정권의 탄압 속에서 힘겹게 자유화 운동을 전개했던 슬픈 현대사를 갖고 있다. 정부의 엄격한 통제 하에 영화는 선전도구로 기능할 때도 많았지만, 현실에 대한 비평기제로서의 역할 역시 꾸준히 지속되었다. 일군의 감독들은 폴란드인이 겪는 특수한 정치적, 도덕적 딜레마를 통해서 인간 조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이어가기도 했다.

폴란드 영화계의 혁신은 1950년대 중후반, 안제이 바이다를 필두로 한 이른바 ‘폴란드 유파’에 의해 시작되었다. 안제이 바이다가 독일점령기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며 신화적 영웅주의를 재결합했다면, 안제이 뭉크는 개인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풍자와 아이러니로 도그마적 현실에 저항했다. 뭉크의 슬랩스틱 소동극 <불운>(1960년)의 주인공은 급변하는 정치상황 속에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된 수모를 당한다. 코 모양 때문에 유대인으로 오인을 받고, 시위대 중간에 껴서 뭇매를 맞고,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다가 스파이로 몰리는 식이다. 그가 ‘불운’이라 여기며 통탄하는 것은, 광기어린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는 얄궂은 숙명 그 자체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 시대에 너무 열심히 꿈을 좇았다는 데에 있으며, 그 꿈들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인간군상의 엇갈리는 욕망을 포착함으로써 시대의 징후를 읽어낸 것은 예르지 카발레로비치의 <야간 열차>(1959년)도 마찬가지다. <야간 열차>는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 사람들의 다양한 긴장 관계를 능란히 교차시킨 걸출한 스릴러다. 기차에 잠입한 살인범의 정체가 밝혀지자 얌전했던 사람들은 일순간 파시스트적인 군중으로 변모한다. 영화의 결말은, 특정한 시공간에 모이고 흩어지는 인간이란 과연 어떠한 존재인가에 대해 씁쓸히 반추하도록 만든다.

폴란드 유파 이후 폴란드 영화계의 새로운 부흥을 이끈 것은 우쯔 영화학교 출신의 ‘무서운 아이들’, 로만 폴란스키와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였다. <막다른 골목>(1966년)과 <신원미상>(1964년)은 이들의 초기작으로, 앞 세대와의 단절을 꾀했던 젊은 감독들의 무정부주의적인 에너지를 엿볼 수 있다. 스콜리모프스키가 직접 연기한 <신원미상>의 주인공은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살아가는 대학생이다. 충동적으로 군대에 자원한 그는 입영열차를 타기 전까지 약 한나절동안 시내 오디세이를 나서게 된다. 이제 그에게는 기존의 애정관계도, 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무용담도 무의미할 뿐이다. 스콜리모프스키는 주인공의 여정을 즉흥적인 리듬으로 담아내며, 견고한 듯 보이는 가치들의 불안정한 실상을 노출시킨다. 폴란스키의 블랙코미디 <막다른 골목>은 부상당한 범죄자가 해변가 저택에 숨어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그가 저택의 주인인 괴짜 부부를 감금하고, 이들 사이의 권력관계가 거듭 도치되면서, 위험한 스릴러는 점차 어수선하고 그로테스크한 코미디로 변모한다. 이 영화들이 갖는 전복성을 그저 젊은 혈기의 산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들이 학창시절에 부조리한 현실이라는 막다른 골목을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독특하고 사적인 양식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폴란드의 거장들은 검열을 피해 해외로 나가거나, 자국에 남아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갔다. 이들은 종종 폴란드의 굴곡진 역사를 소재로 삼았고, 그 중요한 성취지점을 안제이 바이다의 대서사시 <약속의 땅>(1974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이다는 19세기 말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우쯔 시를 완벽히 재생해 냄으로써, 처절한 현실 조건에 짓밟히면서도 결국 그것을 맹렬히 압도해내는 민중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크쥐시토프 자누시의 <조용한 태양의 해>(1984년)는 종전 직후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폴란드 여인과 미국 병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아그니에슈카 홀란드도 그녀의 근작 <어둠 속의 빛>(2011년)에서 홀로코스트의 역사로 되돌아간다. 그녀는 유대인을 지하수도에 숨겨주었던 폴란드인 레오폴드 소하의 번민과 결단의 과정을 좇아간다. 이 영화들은 인간이 가장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을 철저히 재현함으로써, 그 순간들 속에 역설적으로 공존했던 인간의 존엄까지 함께 성찰해낸다.

스크린에 투사한 정치적, 도덕적 딜레마 폴란드 거장들의 영화를 보는 것은 시대적 우수를 체험하는 것과도 같다. 그들은 예리하게 벼려낸 스크린에 자국민이 겪었던 정치적, 도덕적 딜레마를 담아냈고, 이를 인간조건에 대한 성찰로 이어갔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들이 공개되기에, 숨은 명작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안고 영화를 보게 된다. 이 설렘은 일종의 노스탤지어를 수반한다. 90년대 이후 폴란드 영화계는 다른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장 논리에 좌우되었고, 진지하고 철학적인 영화는 상대적으로 주춤했던 것이 사실이다. 모든 영화가 철학적 사유를 담을 필요는 없지만, 풍부한 은유와 깊이 있는 사고가 집적된 영화를 만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재미의 강도에 비해 재미의 스펙트럼에 대해서는 별로 관대하지 못한 것 같은 요즘이라면,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