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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사람] 82세의 청춘 스즈키 세이준 감독
강병진 2012-10-07

손자국은 처음 팔아봤다오

코에 호흡줄을 단 이 할아버지는 병상의 환자가 아니다. 지난 2005년,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스즈키 세이준의 그때 그 모습이다. 그는 호흡줄에 연결된 산소통을 직접 들고 남포동 광장무대에 올랐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갑자기 울컥해졌다. 늙고 병든 사실을 알리고픈 사람은 없다. 남에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면 더더욱 그럴 거다. 영화제 운영진도 스즈키 세이준의 건강을 염려했다면, 남포동으로 그를 부를 게 아니라 직접 일본에 가서 손자국을 받아오는 게 순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82살의 노장은 아무렴 어떠냐는 듯, 늙고 병든 게 대수냐는 듯한 태도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핸드프린팅을 찍게 된 소감을 묻자,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내가 얼굴은 좀 팔렸을지 모르지만, 손자국을 팔긴 처음입니다.” 그는 프린팅 재료준비가 늦어진 틈을 타 김동호 위원장에게 “노래라도 한 곡 하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덕분에 광장을 가득 메운 여고생들이 김동호 위원장을 향해 “노래해!”를 연호했다.) 당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그의 태도는 한결 같았다. 누군가 “82세의 나이에도 어떻게 영화를 연출할 수 있었냐”고 묻자, 그는 “영화감독은 너무 힘든 일이다. 왜 이런 바보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답했다. “100일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게 영화인데, 이게 얼마나 바보같은 일인가.” 과거 스즈키 세이준은 “살아가면서 특별한 사건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그는 2005년 부산영화제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