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즐겨주세요
2008년 10월6일, <M>의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었던 파라다이스 호텔 시드니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이명세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 톱스타 강동원과 공효진, 이연희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백여명의 내외신기자들이 회견장을 찾았으나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 장소가 턱없이 좁았다. 기자들이 자리 확보를 위해 서로 날선 말을 주고받고, 경호원들과 거친 몸싸움을 벌이는 한가운데에서 그야말로 멘탈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했더랬다. <씨네21> 데일리팀에게 ‘마의 3일’이라 불리는 ‘금-토-일’을 넘겼더니, 하늘이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구나 싶던 10월의 월요일이었다.
김동호 집행위원장이 나타난 건 그때였다. 기자들의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상황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던졌던 걸로 기억한다. “12년이나 된 영화제가 기자회견을 이런 식으로 운영합니까?” 아들뻘, 어쩌면 손자뻘일지도 모르는 젊은 기자가 던진 그 질문에 김동호 위원장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몇번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불편한 취재 환경에 불만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 광경을 보는 순간만큼은 가슴이 울컥했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동안 영화제의 큰 어른으로서 김동호 위원장은 더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그의 연륜이 깃든 사과에 회견장은 일순간 숙연해졌다.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매년 10월이면 부산의 수많은 장소에서 김동호 위원장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꼽으라면 나는 여전히 2008년 10월의 그 다사다난했던 날을 얘기할 것이다. 그날 그분이 나를 비롯한 100여명의 기자들에게 보여줬던 건 ‘영화제 마스터의 품격’이었다. 그것야말로 오늘의 부산영화제를 있게 한 큰 원동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