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17회(2012) > 추천영화
<세자매> Three Sisters

<세자매> Three Sisters

왕빙 | 프랑스, 홍콩, 중국 | 2012년 | 153분 OCT 05 롯데9 16:00 OCT 07 롯데9 10:00 OCT 10 CGV4 16:00

많은 사람들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경계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중국의 고산 지대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어린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왕빙의 다큐멘터리 <세 자매>를 보고 있으면 놀랍게도 그런 노력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문득 깨닫게 된다. 왕빙의 영화를 놓고 이러한 지적은 계속되어 왔지만, 그들이 놓치고 있는 핵심은 이 영화 역시 그의 이전 다큐멘터리와 마찬가지로 사실은 지극히 ‘다큐멘터리적’ 이라는 사실이다.

늘 그렇듯 그는 <세 자매>에서도 극영화와 ‘닮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저 반복되는 세 자매의 일상이 때로는 그들의 뒤에서 혹은 그들이 머무는 공간 안에서 아무런 기교 없이 담긴다. 여기에는 아이들을 연출시킨 흔적도, 만들어낸 사건도 없다. 낡은 신발 사이로 상처투성이가 된 아이들의 작은 발이나 잔치에 차려진 음식 앞에서 눈치를 보느라 선뜻 자리에 앉지 못하는 배고픈 소녀의 모습을 ‘극적’으로 담을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편집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돈을 벌러 떠난 아버지를 따라나선 소녀들의 들뜬 새 옷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더럽혀져 고향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 옷에서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간의 진정성은 어떠한 극영화의 장치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왕빙은 그런 순간들에 주목한다.

어쩌면 왕빙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가 아니라 오히려 다큐멘터리의 극단에 서서 다큐멘터리만이 담아낼 수 있는 ‘시간’에 대해 고민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극영화에서 죽은 시간이라고 불리는 ‘데드 타임(dead time)’이 오히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만이 가능한 삶의 시간으로서의 ‘라이브 타임(live time)’.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을 담은 <철서구>(551분)나 고비 사막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원유>(840분), 중국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중국여인의 연대기>(184분), 그리고 이 영화 <세 자매>까지 긴 시간을 버티며 대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시간의 진심은 왕빙의 다큐멘터리가 개척한 새로운 미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