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정 프로그래머는 올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로 출장을 다녀오려 했다. 아프간국립영상자료원이 탈레반 정권의 핍박 속에서 목숨을 걸고 지킨 영화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서류준비와 호텔예약이 끝나자 카불에서는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탈레반 정권에서 극영화만 40여 편 정도가 살아남았다. 다행히 아프가니스탄 자료원에서 10편을 DVD로 만들어 보내주기는 했지만, 그 영화를 다 보지 못한 게 아쉽다.” 하지만 영화를 지키는 그들의 사연이 곧 뜨거운 영화였다. “필름보관소 문을 아예 봉쇄하고 페인트를 칠했다더라. 그리고는 외국영화 프린트들만 따로 쌓아놓고 탈레반이 보는 앞에서 그 필름들을 태웠다. 목숨을 걸고 영화를 지킨 셈이다.” 올해 상영되는 영화는 <새처럼 자유롭게> <옛날 옛적 카불에서>등을 포함해 총 6편. 조영정 프로그래머는 “영문자막도 없이 영화를 봐야했지만”, ‘살아남은 영화’라는 드라마를 잊고 볼 만큼 매료됐다고 말했다. “비극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더라. 하지만 관습적인 비극성이나 비장미가 없었다. 그저 담담히 이게 바로 현실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상영관을 찾은 관객들은 10년이 넘는 시간을 에어컨도 없이 버텨온 영화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