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의 남겨진 신랑이 궁금해
확고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영화인과 장시간 독대하는 마스터 클래스는 영화제의 어느 자리보다 진행자의 어깨를 뭉치게 하는 긴장의 시간이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하러 가는 내 머릿속은 염려와 무수한 ‘플랜B’로 엉켜있었다. 대기실에서 만난 고레에다 감독은 조바심 내는 나를, 특유의 난처한 기색과 장난기가 섞인 느긋한 미소로 바라볼 뿐이었다. “뭘 그리 안달할 것까지야. 다 괜찮을 거예요”라고 타이르는 눈이었다. 연대순으로 필모그래피를 검토할지 주제별로 논의할지 정해 주십사하는 내게, 그는 청중들과 같이 보기로 한 고전 영화 5편의 클립이 아예 본론이 되면 어떻겠냐고 했다. 내심 당황했다. 그의 마스터 클래스를 작정하고 보러 온 관객들이 과연 남의 영화에 대한 추억담에 만족할 수 있을까?
곧이어 2시간 동안 나는 ‘기우’(杞憂)라는 말의 의미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방식으로 깨우치게 됐다. 초등학생 시절 쾌활한 어머니에게 스포일러 공격을 당하면서도 재미있게 보았던 <카사블랑카>, 식장에 홀로 내팽개쳐진 신랑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상상했다는 <졸업>, 아버지가 정말 괴로웠던 건 어린 아들 덕에 절도를 용서받았기 때문이라고 중년이 되어 짐작하게 됐다는 <자전거 도둑>. 고레에다 감독은 히치콕의 <새>에서 서스펜스를 배웠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이튿날 등굣길의 새를 보고 흠칫했다. 그렇게 일상적 이미지가 갑자기 신경을 거스르게 만드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고타츠에 발을 넣고 귤을 까먹으며 듣는 것 같은 이 아늑한 회고들이 고레에다 영화의 정수를 설명하고 있음을 깨닫고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그건 어떻게 사느냐와 어떤 영화를 만드느냐의 두 질문을 들숨과 날숨처럼 한 호흡 속에 고민하고 있는 감독에게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튿날 다시 마주친 감독의 곁에는 부산에 동행한 부인과 딸이 있었다. 아빠에게 작은 새처럼 포르르 안기는 어린 소녀의 모습 속에서 고레에다 감독이 미래에 만들 영화가 순간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