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근무했던 수영만 사무실 대신,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영화의 전당으로 집무실을 옮겼다. 집행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처음으로 치른 지난해 영화제의 시행착오를 지나, ‘본격적인 영화의 전당 시대’를 공표하는 상징적인 이동이기도 하다. 그 어느 해보다 시도도 준비도 완벽하다는 자신감으로 시종 밝은 표정이다. 개막 하루 전, 마지막 점검으로 바쁜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추석 연휴 직후라 준비가 잘 될까하는 걱정이 많았다. =프린트 수급 관련해서 세관 문제가 가장 컸다. 고맙게도 직원들이 비상대기를 해서라도 도움을 주겠다고 하더라. 영화제 내부적으로도 2년 전부터 스탭들 시스템이 갖춰진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추석이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했다. 바짝 긴장해서 앞당겨 준비하다보니 예년보다 오히려 일이 2~3일 빨리 진행됐다. ‘이용관만 사고 안치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웃음)
-바로 내일이 개막식이다. 개폐막식 지정좌석제가 올해 처음으로 도입됐는데 혼선은 없었나. =모험이었다. 근데 스탭들이 먼저 자진해서 해보자고 하더라. 그래서 한번 해보자 싶었다. 거의 천명이 되는 사람을 좌석제로 운용하는 거다. 받는 순간 좌석 번호가 배정되니 예전처럼 누굴 초대해 달라거나 데려 갈 테니 좌석 좀 달라는 가외의 부탁이 없어졌다. 예외가 거의 없어진 거다. 놀라운 일이다.
-올해의 가장 큰 변화는 역시 기존의 8일에서 9일로 영화제 일수가 늘었다. 두 번의 주말이다. 그만큼 규모가 커졌다는 걸 증명해준다. =관객들이 주말에 너무 폭증한다. 이러다 주말관객만 있는 영화제가 되겠다 싶더라. 반성 좀 하자 싶었다. 부산 지역인들이 조금 양보하고, 타지 사람들이 먼저 보는 걸 정착시키면 모두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이미 마지막 날 상영작도 거의 예매가 끝난 상황이다. 이렇게 하면 첫 주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주말도 살아날 수 있다고 본다. 결과는 영화제가 끝난 후 분석해봐야겠지만, 두 번째 주의 금, 토, 일을 모두 활용할 수 있겠구나 싶다. 스탭들이야 물론 말할 것도 없이 힘들겠지만.(웃음)
-예산은 늘고, 관객 점유율은 떨어지는 게 아닌가. =관객수요만 있다면 그 정도 예산은 충당가능하다. 관객을 3등분 해보자 했다. 첫 주말, 차분한 주중, 그리고 다시 활기찬 주말의 리듬을 구축하는 거다. 점유율은? 맞다. 떨어지길 원했다. 70%는 넘더라도 적어도 80%는 안되게 하자. 영화만 보는 영화관 문화가 아니라 생각할 시간도 갖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광장의 문화를 구축하고 싶었다. 관객과 차분하게 만날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드는 거다. 프로그래밍과 상영관련 이벤트를 적절히 배치한다면, 지금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영화제 초창기, 감독과 관객이 영화에 대해 끝장 토론했던 분위기를 되살릴 수 있다.
-지난해부터 영화의 전당 시대가 열렸다. 상대적으로 축소됐던 남포동에서 올해는 다양한 프로그래밍이 준비되어 있다. =영화의 전당에 치중하면서 남포동이 계륵(鷄肋)이 되어버렸다. 이런 분위기라면 곤란했다. 남포동을 특화시켜보자는 안을 냈다. 남포동에서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해운대와 별개로 남포동에서도 충분히 영화제를 즐길 수 있게된다. 선댄스영화제도 두 개 도시에서 하는 걸 보니 이런 특화 정책이 불가능한 게 아니겠더라. 올해는 키즈 프로그램과 추억의 영화 클래식을 시작했는데 칸이나 베를린영화제에서 클래식 프로그램을 하는 것과도 맞닿는 프로그램이다. 외화뿐만 아니라 한국 고전 영화 상영도 점차 늘려갈 방침이다.
-전임 김동호 위원장은 이른바 해외 네트워크가 풍부하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해보다 올해 들어 그 빈자리가 더 커지지 않았겠나. =집행위원장을 안하려고 도망가려 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웃음) 학교에 재직 중이니 해외 활동이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흔히들 말하는 ‘김동호 위원장의 그림자’라는 소리는 두렵지 않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영화제가 튼튼하고 위상이 높아지는 게 중요한 거다. ‘이용관 시대’라는 말은 김동호 위원장과 교체가 이루어지니 그런 표현을 쓸 뿐이다. 다만, 영화제 인지도가 높아지다 보니 우리 영화제가 돈 많은 영화제로 소문나고, 그만큼 요구도 많아졌다는 건 어려운 부분이다. 오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은데 막상 초청하면 눈높이가 너무 높더라. 분명한 건 우린 게스트에 좌우되지 않고, 영화제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거다.
-올 영화제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 =부산국제영화제야 말로 블루 오션이 되어야 한다. 그간 우린 엉뚱한 실험을 많이 해왔다. 아시아 영화 지원제도도 그 일환이었고, 다행히 모두 결실을 거두고 있다. 올해는 마켓을 활성화하려고 한다. 아시아의 허브가 되려면 마켓의 활성화는 필수다. 다행히 영화진흥위원회도 적극 예산을 지원해 주고 있다. 더불어 학술적인 측면도 점차 늘려갈 예정이다. 페스티벌, 마켓, 학술대회가 한 광장 안에서 이루어져서 영화의 아고라가 되는 거다. 올해가 그런 블루오션으로 가는 본격적인 해가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