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16회(2011) > 영화제 소식
2%를 채워준 무화과
2011-10-12

1회 부산국제영화제부터 참가를 한 나는 부산의 열혈 팬이다. 내리 15년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고 올 때마다 즐거웠다. 처음엔 동료들과 같이 오다가 어느 땐가부터 애인을 대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귀던 애인들 중에는 성격이 모난 놈도 있었는데, 그 놈과 함께 왔을 때가 제일 재미없었고 힘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해 뉴 커런츠에 초청 받은 <질투는 나의 힘>이 상을 받기도 했다. 나처럼 애인이나 배우자를 대동하고 오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다. 영화제에 일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고 꼭 일이 아니라도 오랜만에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축제고 또 축제니까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 보다는 애인과 함께하려고 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를 축제에서 드러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처음엔 낯설어 하던 영화인들이 당연하게 여기게 되기까지 여러 해가 흘렀다.

지난해에는 더 욕심을 내어 처음으로 엄마를 모시고 왔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남으신 엄마와 여행을 겸한 것이었고 애인과 함께였으니 특별한 가족여행이었다. 내가 부산에 같이 가자고 청했을 때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시던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동안 한 번도 같이 가자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던 엄마셨는데, 말을 꺼내기 무섭게 냉큼 OK 사인을 보내셨고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아들의 동성파트너와 함께 하는 여행에 쿨한 것을 넘어 핫하게 반겨주시니 여간 즐거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먹을거리였다. 이북에서 태어나서 피난 이후엔 줄곧 서울에서 살아오신 엄마에게 부산 음식이 맞을 것 같지 않았다. 여행 중에 최고는 음식 아닌가. 나름 맛집으로만 골라서 모시고 다녔지만 왠지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가 해운대시장 골목에 있는 허름한 과일가게에서 무화과를 만났다. 잘 익은 무화과 한 입에 부족했던 2%는 바로 채워졌다. 게다가 5천원이면 바구니에 가득 담긴 무화과를 살 수 있었다. 엄마는 또 환하게 웃으셨다.

관련인물

글 김조광수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