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바르시니코프> My Father Is Baryshnikov 드미트리 포볼로츠키,마르크 드루고이 | 러시아 | 2011분 | 88분 |플래시 포워드
보니 엠의 ‘써니’를 테마로 한 또 한 편의 좌충우돌 성장담. 이번에는 페레스트로이카 전야의 러시아, 주인공은 토슈즈를 신은 소년 보리스 피시킨이다. 볼쇼이 무용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는 또래의 다른 학생들에 비해 작고 마른 체구를 가졌다. 재능이 도드라지는 편도 아니다. 남자애들에게는 놀림을, 여자애들에게는 멸시를, 그리고 선생님들한테는 매일같이 지적을 받는 처지지만, 그에게도 꿈은 있다. 언젠가는 반에서 제일 예쁜 여자애를 리프트하고 스테이지를 날아다니리라는 것. 어느 날, 보리스는 미하일 바르시니코프의 영상이 담긴 테이프를 보고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확신하게 된다. 때마침 자신감이 샘솟고, 그는 진짜 남자가 된 듯하다. 그의 달콤한 꿈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정말 미국에 있는 것일까.
영화는 1986년 당시 러시아의 사회상을 담고 있다. 곳곳에 생필품을 사려고 길게 늘어 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시계와 리바이스 청바지를 암거래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좇는 단속반원도 등장한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고 바르시니코프의 테이프를 처분하라 지시하지만, 사람들은 집에 모여앉아 더듬더듬 영어를 배울 뿐이다. 영화가 페레스트로이카나 당대의 역사에 대해 깊이 있게 그리거나 어떤 확고한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의 방점은 그 변혁의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단면들에 있다. <나의 아버지 바르시니코프>에는 실제로 볼쇼이 발레학교를 다녔던 감독의 유년기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 영화는 한 소년이 엉뚱한 상상과 믿음으로 외로움과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보리스의 근거 없는 당당함은 결국 그가 가진 재능의 한계마저 뛰어넘으며, 그로 하여금 스테이지를 넘어 스크린마저 훨훨 날도록 만든다. 가족과 웃음이 있는 쿨하고도 따뜻한 영화다.